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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악몽

14.09.22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네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했다. 몸을 일으켜 이불을 부여잡은 채로 눈물만 뚝뚝 흘리는 날도 있었고, 짐승 같은 소리로 서럽게 끅끅대며 울기도 하고, 더러는 허공에 수도 없이 손을 뻗으며 저를 사랑해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잠에서 깨어나 네가 다시 누워 잠에 들 때까지를 기다렸고, 네가 다시 완전히 잠이 들었음에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그걸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나 힘이 들었다. 네가 아파하고, 흐느끼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말도 안 되지만 내 가슴이 아파오는 것 같아서. 웃기게도 너는 전날 밤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밤사이의 일을 물으면, 너는 인상을 구기며 불쾌함을 대놓고 드러냈다. ‘이상한 짓 한 건 아니겠지?’너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렇게 묻고는 했다.


할머니도, 주은찬도, 현우도, 심지어 본인 자신까지도 모르는 일을, 나 혼자만이 알고 있었다. 처음엔 너의 약점을 잡았다며 마냥 좋아했다. 네가 고기반찬을 해주지 않을 때마다 이 일을 빌미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딱 일주일 뿐 이었다. 너는 무척이나 서럽게 울어서, 가만히 누운 나조차도 먹먹해지는 것만 같이 아파해서, 나는 곧 그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네가 마냥 안쓰럽고, 가여웠다.


 

잘못했어요……

 


또다시. 네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네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가 않았다. 귀를 틀어막은 손가락 틈으로, 흐느끼는 네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허공에 팔을 휘저으며 너는 계속해서 웅얼거렸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어왔고, 단 한 번도 그에 마음이 아파본 적이 없었지만, 너는 그랬다. 너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괜스레 내가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급기야 나는 네 울음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손으로 네 손목을 붙잡고, 너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는 참으로 멍청했다. 잠에서 깨어 언제나처럼 내 멱살을 잡았으면 좋았을 걸. 너는 미련스럽게 더욱 큰 소리로 울음을 뱉으며 연신 내게 사과했다. 내가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만 방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청가람, 니가 우는 이유가 뭐야.

 

 

 

 

 

넌 요즘 밤마다 뭘 하길래 이렇게 피곤해해?”

 

 

학교엘 가려고 운동화 끈을 묶는데, 뒤통수에서 네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밤마다 듣던 네 울음소리와 겹치는 것만 같아서, 나는 작게 어깨를 떨었다. 너는 영 미덥지 못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대답하지 못했다. 글쎄. 일부러 날이 선 투로 대답하며 등을 돌렸다. , 주은찬, 쟨 왜 저래?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넌, 평생 모를 거야.

 

 

, 가람이랑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럼 왜 그래?”

 


영 의도를 모르겠다는 멍청한 얼굴이 보였다. 그야나는 입을 열려다 네 생각이 나 곧 입을 다물었다. 주은찬이 옆에서 계속해서 귀찮게 굴고, 이것저것을 물어 와서 짜증이 나는 얼굴로 한참 바라보고 있었더니 눈치를 챈 듯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럴 때야말로, 주은찬이 현무처럼 눈치가 없지 않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가람이랑은 아무 일 없는 거지?”

 

 

내 생각을 비웃듯, 하굣길에도 주은찬은 끈질기게 물어왔다. 그냥 기분이 안 좋은가보지. 틱틱거리며 내뱉은 말에, 주은찬은 아, 하고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듯 했다.


그 날은 이른 저녁부터 비가 내렸다. 빗방울은 얇아질 줄을 몰랐고, 마루 밑에서 자던 멍걸이는 마루 위로 올라와 덜덜 떨고 있었다. 가만히 비가 내리는 바깥을 바라보다, 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는 냉장고에 반찬통을 넣으며 입술을 오물거리고, 곧 고무장갑을 끼며 물을 틀었다. 나는 네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이나 지켜보았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데, 넌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밤마다 서럽게 울어대는 걸까.


 

청룡.”


 

다시 한 번, 네 이름을 불렀다.


 

너 혹시 예전에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힐긋 내 쪽을 바라보는 네 눈동자가 소름이 끼치게 냉담했다. 너는 싸늘해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이상의 아무런 질문도 할 수 없었다. 네게 어떠한 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선을 긋는 행위였다. 이 선 넘어오지 마. 어릴 적에 으레 하고 놀았던 말이라지만, 그 때와 지금은 의미조차가 달랐다. 뭐야, 백건. 냉정하기 짝이 없는 그 말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슬쩍 안대를 위로 밀어 올렸다. 미간에 잔뜩 구름을 잡고서, 너는 그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만 있었다.


 

……잘 때는 참 얌전한데.”


 

눈만 뜨면 예민하단 말이지. 나는 깊게 한숨을 쉬며 다시 안대를 씌워주었다. 네 숨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방안엔 네 흐느낌소리만이 가득했다. 너는 그렇게 울면서도 한없이 그 이름을 부르고만 있었다. 어느새 너의 그런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로 굳어져버린 것에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나는 여전히 네 잠꼬대에 귀를 기울였다.

 


아빠.”


 

지금의 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된 목소리에, 나는 그만 기겁을 할 뻔했다. 들어보지 못한 상냥하고, 한껏 애정을 담은 목소리였다. 나는 손으로 내 입을 막으며 가만히 숨을 죽였다.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것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울음을 흘리던 너는 배시시 웃으며 또다시 그 이름을 불렀다. 아빠. 그리고 곧 그 목소리가 공포에 잠기고, 너는 한참을 흐느꼈던 것 같다.

 

 

 

 

 

비는 며칠이나 내렸다. 그칠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간간이 빗줄기가 약해지기는 했다, 또다시 굵은 빗방울이 내렸다. 검고 어두운 먹구름에 가려 달빛은 보이지 않고, 축축해진 흙냄새만이 났다. 문 너머엔 네가 있었다. 너의 울음소리를 듣는 게 힘이 들어서, 나는 네게서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얇은 문 너머에서 이불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 오늘도. 나는 끔찍한 상상을 하며,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콧등으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차갑고 눅눅하고, 여지껏 눌려있던 풀 냄새도 났다. 꼬박 한 시간이 지났다. 너는 그 긴 시간동안 아파하고, 눈물을 흘렸다. 무서워서 차마 문을 열어 볼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도 네가 우는 걸 보면, 나도 너를 따라 울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그저 눈을 감은 채 네 간간히 새 나오는 네 울음소리를 들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내리던 빗소리에 묻혀, 네 울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영원히 비가 그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마당은 온통 진창이 되어, 비에 젖은 땅이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 하고 등 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네 하얀 발목이 보였다. 너는 허공에 손을 뻗으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온몸이 흠뻑 젖고, 발이 진탕에 빠졌음에도 너는 쉬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청가람.”


 

너의 이름을 불렀다. 네 손목을 붙들고, 거듭해서 너를 불렀다. 너는 내 쪽에 시선을 주는가 싶더니, 다시 허공을 바라보며 아빠, 하고 중얼거렸다. 너는 여전히 울고 있는 채였다. 다른 때와 달랐던 것은, 절대로 입 밖으로 울음을 내지 않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그런 너를 보자니 너무 일찍 철이 든 어린 아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그만 참을 수가 없어 네 어깨를 잡아끌었다.


축축하게 젖은 저지 너머로 떨림이 느껴졌다. 너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소리를 죽여 울었다. 빗소리에 섞여 네 울음이 들릴 리가 없는데도, 너는 애써 소리를 내지 않았다. 너는 그저 내 옷깃을 쥐고선 한참이나 그렇게 울다가, 나를 밀어내며 도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 날 꼬박 밤을 지새웠다. 내 품에 안기었던 네 온기를 잃어버리고, 방으로 돌아가기 전 네가 귓가에 고맙다 속삭여 준 말을 잊어버릴 것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이 가고 아침이 오기 직전, 지겹도록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여전히 마당은 진창 투성이었고, 멍걸이는 마루에서 내려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침이 밝았다.

문을 열고 방으로 돌아가자, 눈가가 새빨개진 채로 잠에서 깬 네가 제일먼저 보였다. 너는 여전히 어젯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멍청한 얼굴로 잠깐 나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입을 다물었다.


 

꿈을, 꿨어.”


 

평소의 너답지 않게, 너는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슨 꿈이었는데?”

지독하고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거.”


 

텁텁한 네 목소리가 귀를 할퀴었다. 어제 그렇게 슬프게 울면서 불렀던 주제에.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걸 겨우 틀어막곤, 난 모른체하며 대답했다.

 


악몽이야?”

 


초점을 잃은 네 눈이 나를 향했다. 새빨간 너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난 숨을 삼켰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넌 아마 희미하게 웃고 있었던 것 같다. , 그런가봐. 무덤덤한 어투에, 나는 눈을 굴려 너를 바라보았다.

 


악몽이지.”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뱉어내는 그 모습이 퍽이나 쓸쓸해 보여서, 나는 그만 너를 끌어안을 뻔 했다. 청가람, 청가람. 입속으로 영원히 부르지 못할 너의 이름 석자를 부르며, 나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답했다. 이제는, 청가람 네가 다시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