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단절
14.09.24
너는 단 한 번도 내게 다정스레 대해주지 않았다. 웃어주지도,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고는, 단순히 신경질적이고 짜증이 섞인 하나의 단어에 불과한 듯 보였다. 그러나 꿈에서만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언제나와는 다르게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돌아보며,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백건. 다정이 담긴 목소리로, 너는 그렇게 나를 불렀더랬다.
잠에서 깨어 가만히 네 쪽을 돌아보았다. 매일같이 잠꼬대를 하며, 목 끝까지 덮여있던 이불을 발치에 건 채였다. 손을 뻗어 네 손가락 끝을 쥐었다. 어린아이처럼 작고, 보드라운 게 기분이 좋았다. 너는 홍알거리며 잠꼬대를 하더니, 내 손에서 제 손가락을 빼며 등을 돌려 누웠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데도.
꿈속의 너 또한 현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나를 향한 웃음으로, 목소리로 나를 홀리며 손을 뻗더니, 네 손을 맞잡으려 네게 다가가면 너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현실의 너보다, 꿈속의 네가 더 밉고 야속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주곤, 너는 그렇게 나를 떠나가고는 했다.
나는 오직 네 생각만을 했다. 눈을 감고 시선을 돌려도 그 어디에나 네가 보이는 것 같았다. 저기에서는 네가 손을 흔들고, 이쪽에서는 세탁물을 한아름 끌어안은 채로 이름을 불렀다. 물론 네가 손을 흔들고 부르는 것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괜스레 기대를 하곤 했다. 그 수많은 네 모습 중 하나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는 않을까하여. 그래서 나는 더더욱 네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너의 뒤를 쫓고, 너의 그림자를 밟았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네 곁에 있고만 싶었다. 학교에 있을 때도 네 생각을 했다. 수련을 하고, 샤워를 하는 도중에도, 소파에 앉아 저녁을 기다리고, 심지어 너를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나는 네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아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아니, 그보다 더욱 벅찬 감정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든지.
한 번 그렇게 생각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전보다 더더욱 노골적으로 너를 쫓았다. 네가 있는 곳마다 내가 있어야 했다. 잠시라도 네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서웠고, 네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너 또한, 그런 나를 눈치 챈 듯 했다. 아니,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더더욱 대담해진 내 행동에 네가 나를 피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너는 더더욱 나를 무시했고, 모른체했지만, 나는 그럼에도 네가 좋았다.
언젠가였다. 웬일인지 너는 잠도 자지 않고 가만히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른 척 등을 돌리고 있자니 너의 무시무시한 살기가 신경 쓰였고, 너를 마주하자니 네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가 무서웠다. 그래도 나는 몸을 일으켰다. 단순한 이유였다. 네가 보고 싶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나는 너를 마주했다. 내내 나를 노려보던 그 눈이 지독하게도 예뻤다. 내가 미쳤지. 입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이며 나는 네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가 검붉게 빛이 났다. 나는 넋을 놓은 채로 너를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입으로 수백 번이나 중얼거리던 ‘예쁘다’하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나는 얼른 내 입을 틀어막았다. 네가 입을 뗀 것은 그때였다.
“백건.”
내 이름을 부른 그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짜증이 섞여있지도, 신경질적이지도 않았고, 내가 바라던 대로 다정스럽다거나 상냥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길바닥에 버려진 그 무언가를 보며 ‘누가 저런 걸 버린 거야.’하고 낮게 중얼거리던, 그 때의 약간의 경멸이 담긴 목소리와 닮은 것 같아서,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네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 무엇에도 시선을 주지 않은 듯,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길게는 말하지 않을게.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게 티를 내면, 아무리 멍청해도 알 수밖에 없잖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솔직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너는 얌전히 앉아 두 손을 무릎위에 올린 채였고, 내게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으며 조근조근 말을 이어나갔다. 미친 게 틀림없었다. 넌 내게 신랄한 말을 하며 어떻게든 상처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내가 상처를 받게 해서, 그렇게 너덜너덜해져서 너를 포기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네가 쏟아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히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는데도, 왜인지 나는 네가 밉지가 않았다.
“네 그 토 나오는 취향에도 난 관심 없어. 그러니까 백건.”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다. 너는 이런 마음을 알까.
“더 이상 그딴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
네 말에는 한껏 가시가 돋아있었고, 경멸을 잔뜩 담고 있었지만, 나는 그럼에도 네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듣고 있어? 다시 한 번 확인을 요구하는 너의 말에, 나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네게로 손을 뻗었다.
“…사랑해.”
꾹꾹 눌러 담던 말을 뱉어내며, 네 어깨를 짓눌렀다. 너는 벽에 어정쩡하게 기댄 자세가 되어, 손으로 내 몸을 떠밀었다. 너 또한 무술을 배웠으니 당연히 알고 있었을 텐데. 당황스러움에 머릿속이 새하얘진 건지, 아니며 원체 순진하고 멍청한 건지…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귓가에 조용하게 속삭이며, 나는 다시금 네 이름을 불렀다.
“청가람.”
질끈 감은 네 눈꺼풀이 보였다. 어떻게든 내 입술을 피하려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네가 귀엽고 우스워서,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네 턱을 쥐었다. 으득 입술을 깨문 이빨이 보였다. 정말로 싫으면 소리라도 질러보든가. 정말로 소리라도 지를 참이었는지, 살짝 벌어진 입술이 보였다.
입안에서 비릿한 맛이 났다. 너는 가쁜 몰아쉬며 소매로 제 입술을 벅벅 문질러댔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 눈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멍걸이를 바라볼 때도 저렇게 바라보진 않았는데. 씁쓸한 기분이 들어 나는 그제야 네 눈을 피했다. 뜯어진 입술에서 자꾸만 피가 나고, 너는 빠르게 내 곁을 지나쳤다. 문을 열고, 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을 맞으며, 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역겨운 새끼.”
그저 네가 남긴 그 말만이 허공에 맴돌아, 나는 멍하니 네가 떠나간 자리를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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