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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내가 여자로 보이냐, 모 님께서 올리신 트윗을 참고하였습니다.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미정

14.09.04







요즘따라 백건이 이상하다. 요 며칠, 중앙에 있는 모두의 생각이었다. 가람에게 고기 반찬을 해달라 보채지도 않고, 이따금 잠버릇을 탓하며 가람에게 싸움을 걸어오는 일도 없었다. 학교에도 얌전히 갔고, 매화장에서 수련을 하면서 넋을 놓는 일이 많아졌다. 은찬의 말에도, 현우의 장난에도, 백건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제 생각엔 백호공자께서 뭔갈 잘 못 드신 것 같습니다.”


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자 은찬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요즘 건이가 이상해, 대련도 안 하려고 해. 할머니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그렇다. 바로 면전에 대고 네가 이상하네 마네 하면 대꾸라도 해야 정상일 텐데. 백건은 턱을 괸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위대함을 깨달은 거지.”


가람이 저 멀리에서부터 밥그릇을 들고 오며 말했다. 어깨가 하늘같이 솟은 걸 보니 요즘의 백건이 퍽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잠을 자다 내던져지는 일도 없고, 반찬투정을 하는 일도 없다. 참 좋은 변화야. 가람은 생글생글 웃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밥을 먹는 내내 백건은 상태가 이상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심했다. 백건은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 숟갈 먹더니, 그대로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그렇게나 노래를 부르던 고기 반찬도, 국에도 단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


“맛없다.”



백건은 그저 그 말만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큰일 났다. 현우와 은찬이 똑같은 생각이라도 하듯 서로를 마주보았다. 둘은 조심스레 가람의 눈치를 살폈다. 가람은 허! 하고 헛웃음을 치며 백건을 쫓았다. 


“……백호 공자는, 왜 저러는 겁니까?”



한참의 정적을 깨듯, 현우가 입을 열었다. 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맛있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가람과 백건은 한참이 지나서도 오질 않았다. 





백건은 매화장에 있었다. 명상이라도 할 셈이었는지 수련복까지 갖춰 입고서. 가람은 백건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백건을 불러세웠다.


“백건.”
“…”
“너,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백건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가람은 오래토록이나 백건을 노려보다가, 그래, 말하기 싫으면 말아라. 하고 등을 돌렸다. 백건이 가람을 불러 세운 건 그 때였다. 


“야, 청룡.”
“뭐야.”
“……나, 널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말해놓고서 백건은 서둘러 제 입을 막았다. 가람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그는 성큼성큼 백건의 앞까지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날 피한 게 그거 때문이야?”


백건은 대답하지 않고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어이가 없었는지 가람은 파하, 하고 웃었다. 지금까지 몇 달을 함께 했지만, 저런 표정은 본 적이 없었다. 백건은 차마 가람의 얼굴을 살필 수도 없었다. 

“백건.”


가람의 목소리는 조용히 새어나왔다. 굳게 다문 입술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눈초리에서 무엇을 말하려는지 다 느껴지는 것만 같아, 백건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의 사이가 마치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백건은 온 신경을 세워 가람의 말에 집중했다. 


“넌, 내가 여자로 보이냐.”



그 말엔 아마 경멸과 조롱이 담겨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