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de-image




+과거 날조 주의, 1000트윗 리퀘스트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놀이공원

14.09.05









“놀이공원? 그딴 덴 인간 놈들이나 가는 데지. 난 그런데에 관심 없는데.”


분명 일주일 전만 해도 가람은 제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사정사정하는 현우와 은찬에게 그렇게 말했다. 





꺄아아, 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저 멀리에서부터 들렸다. 현우는 속세의 놀이공원은 이런 곳이냐며 방방 뛰었고, 백건은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이라며 반가워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은찬은 익숙한 듯 이거부터 탈까? 하고 셋에게 물어왔지만 가람만은 즐거워하지 못했다. 가람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웃음소리에 표정이 굳은 채로 은찬의 팔을 붙들고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뭡니까, 청룡공자. 고작 이런 게 무서워 그렇게 벌벌 떨고 있는 겁니까?”
“가람이, 이런 데에 약했구나…”
“죽을 때까지 너와 싸울 구실로는 좋군.”



벌벌 떨고 있는 가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셋은 각자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평소대로였다면 당장에 주먹이 날아오거나, 발길에 채이거나, 지독한 욕을 들어먹었겠지만 가람은 완전히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은찬은 제일 먼저 롤러코스터가 있는 데로 갔다. 길게 늘어선 줄과, 끝없이 올라가는 열차를 바라보며, 가람은 넋을 잃은 듯 눈까지 풀려있었다. 난생 처음 저런 건 처음 봤다. 수련을 하면서 수십 번이나 메다 꽂히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메다 꽂히는 거야 아프기만 하니 그만이었지만, 한 번 나무 위로 올라가면 가람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위에서 벌벌 떨며 내려오지를 못했다. 지금, 가람은 딱 그런 기분이었다. 저걸 타면 숨도 못 쉴 거야. 경보가 울리는 머릿속에서 그런 결론을 내렸다. 


“…나 속이 안 좋은 것 같아, 안 탈래.”


하고 가람이 빠질라 치면,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공자. 올 때까지만 해도 쌩쌩하셨잖습니까.”
“도망치는거냐, 청룡.”
“가람아, 이거 별로 안 무서워.”


등의 말을 하며 가람의 목덜미를 붙들었다. 가람은 줄을 기다리며 몇 번이나 빠져나가려고 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끌고 서둘러 빠져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백건의 손에 의해 끌려오고, 절대로 못 탄다고 고개를 저으면 은찬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현우 또한 그걸 놓치지 않고 얄미운 얼굴로 가람을 놀려대는 덕분에, 가람은 반 강제로 열차에 타게 되었다. 
열차가 꼭대기에 다다르던 순간까지, 가람은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바로 곁에 앉은 백건이 몇 번이나 입 좀 닥치라는 식으로 말했고, 뒤에 있던 은찬이 손이라도 잡아줄까, 하며 연민의 눈빛을 보내었다. 현우는 나름대로 제 마음 속의 공포심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람은 거기까지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덜컥, 하고 공중에서 잠깐 멈춘 열차의 엔진소리, 내려간다, 하고 작게 소리치던 은찬의 목소리, 곧이어 들려오던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저 멀리의 어딘가에서 하이얀 옷을 입은 누군가가 가람에게 손짓을 하며 어서와, 하고 환하게 웃던 얼굴까지. 가람의 기억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나 토할 것 같아.”


가람은 벤치에 앉아 이마를 짚었다. 현우가 바로 옆에 앉아 오늘 청룡공자의 모습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하고 놀려대었지만 뭐라고 할 기운도 나질 않았다. 은찬은 괜히 데려왔나, 내 잘못인가하며 계속해서 가람의 눈치를 살피더니 약이라도 사러 간 모양이었다. 백건은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가람의 손목을 붙들고 성큼성큼 어딘가로 향했다. 저 뒤에서 현우가 어딜 가느냐 물어오는 것 같았지만 백건은 가볍게 무시했다.





“뭐야, 백건…”


백건은 가람의 손목을 붙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회전목마가 있는 데에서 줄을 섰다. 딸랑, 하고 낮게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앉아있던 말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는 어딘가에서 들었던 자장가 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목마에 탄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따금 어린 아이와 함께 말에 탄 부모의 모습도 보였다. 가람은 거기에서 잠깐 멈칫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종소리와 노랫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거 한 번도 안 타봤지?”


백건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다. 그 모습은 놀리는 것인지, 묻는 것인지 분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장난스런 얼굴이었다. 가람은 백건의 표정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이런 거 한 번도 안 타봤지. 그 물음에 가람은 가슴이 내려앉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목마가 멈추고,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부모는 모두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그 품에 안겨 어리광을 피웠다. 가람의 눈에 그 장면들이 담겼다. 가람은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백건이 가람을 찾은 곳은 회전목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음료수 자판기의 뒤편이었다. 가람은 그 뒤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두 손으로 귀를 꼭 막고 있었다. 백건은 조심스레 몸을 숙여 가람과 눈을 맞췄다.


“어디로 가나 했더니, 고작 여기냐.”
“……”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백건은 뒤통수를 긁으며 으으, 하고 조그맣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미안, 하고 작은 소리로 사과했다.


“예민한 데를 건드린 것 같은데, 그건 이걸로 퉁쳐.”


백건은 손을 뻗어 가람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평소라면 손이라도 거칠게 쳐냈을 텐데. 


“네가 여기서 무슨 추억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네 가족사가 어떻게 꼬여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내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떼며, 가람이 슬쩍 백건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살짝 헛기침을 하며, 백건은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댔다.


“주은찬이랑, 현무랑, 나랑 이렇게 놀러온 걸로, 나쁘지 않지?”


이런 기회는 다신 안 올 테니까. 백건은 장난스러운 미소로 마무리했다. 가람도 기분이 많이 누그러진 듯,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낯짝도 두껍네.”



하고 대답했다. 내가 알던 청가람이 맞구나. 백건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가람을 바라보았다. 저를 향한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가람이 뭐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다, 하나 더 줄 게 있는데. 한 순간에 손을 뻗어, 백건은 가람의 어깨를 눌렀다. 가람은 자판기 기계의 뒤에 등을 기댄 채로 주저앉은 꼴이 되었고, 백건은 가람의 어깨를 누른 손에 여전히 힘을 준 채로 짧게 입을 맞추었다.


“이것도, 잊지 말고.”


귓가에 작게 속삭여오는 그 목소리에, 가람은 그만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