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
주은찬x청가람
비밀_2
14.09.10
네가 내 팔을 물고 딱 반년이 지났을 때, 너는 다시 내 방 문을 열었다. 나는 반가운 얼굴을 애써 감추려고 했는데, 네 눈엔 그게 딱 보인 모양이었다. 너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고, 곧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어? 하고 비아냥거렸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네게 얼른 팔을 내주었다. 너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내 팔을 물었다. 피를 빠는 네 모습은, 퍽이나 야한 얼굴이었다. 나는 네 목덜미에서, 내 팔을 문 입술에서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조그마한 방에는 현우의 잠꼬대 소리와, 내 숨소리만이 가만히 울릴 뿐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너 어디 아픈 거 아냐?”
너는 소매로 피가 묻은 입술을 닦으며 물었다. 너를 상대로 야한 생각을 했다는 건 죽어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닌데? 하고 얼버무렸다. 너는 나를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번에 너무 많은 피가 빠져나갔던 탓인지, 살짝 눈앞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살짝 풀린 내 눈을 보더니, 너는 조용히 어깨를 내주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네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방금 막 씻은 건지 네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샴푸 냄새인지, 아니면 원래의 네 냄새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향에 취해 가만히 네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얌전히 모은 채로 다리를 껴안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작고 여린 손을 만졌다. 네가 몸을 떨었지만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네 손을 쥐고, 손을 겹쳤다.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를 낀 네 손이 보여 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뭐야, 주은찬.”
“……기분 좋다.”
내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하자, 너는 곧 미친…, 하고 나를 흘겨보았다. 너는 손을 빼려 했지만 나는 꼭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놓지 마. 계속 잡고 있어. 조그맣게 속삭이자, 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너나, 나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네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열려진 문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이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은찬이 가람의 손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 은찬은 가람과 장을 보러 가거나, 어쩌다 둘만이 남게 되는 일이 있으면 조용히 가람의 손을 잡았다. 가람은 처음엔 손을 놓으며 거부하는 듯 했으나, 하루 이틀을 그러니 그러려니 하며 가만히 손을 내버려두었다. 가람이 은찬을 찾아오는 날은 갈수록 잦아졌다. 처음은 반 년, 두 번째는 넉 달, 세 번째는 두 달이었다. 급기야 가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은찬의 방문을 열어제꼈고, 은찬은 자주 빈혈에 시달렸고, 언젠가는 매화장에서 수련을 하던 중 그만 중심을 잃고 기둥 위에서 떨어져버리기도 했다.
은찬이 기둥에서 떨어지던 날, 하루 온종일 가람은 은찬의 곁에 앉아 미안하다고만 했다. 이따금 눈물을 보인 듯 소매로 눈가를 꾹꾹 눌러 닦았고, 소용 있을까, 하고 걱정하며 머리에 물수건을 얹어주고, 손을 잡아주며 괜찮아? 하고 몇 번이나 거듭해서 물었다. 미안해. 반복되는 가람의 사과에, 은찬은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내가 조절을 못해서… 그래서……”
가람은 그렇게 말하며 끝끝내 눈물을 보였다. 미안해 죽을 듯한 표정과, 평소와는 전혀다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되려 은찬이 죄책감을 느꼈다. 은찬은 병상에 누워 하루를 꼬박 잠만 자며 보냈다. 가람은 그 옆에 따라 누운 채로, 가만히 잠든 은찬의 손가락을 쥐고, 손깍지를 껴보고, 한 손에 잡힐 정도로 말라버린 손목을 그러쥐고, 그리고 울음을 삼켰다가, 다시 사과했다.
“……주은찬.”
가람은 조용한 소리로 은찬의 이름을 불렀다. 은찬은 자고 있는 채였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람은 그래도 좋은 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사신 후계자라서, 다행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가람의 목소리는 푹 꺼져 있었다. 깊게 가라앉아서, 한 마디 한 마디를 뱉는 것이 버거워 보일 정도로.
“난 아주 오랫동안을 살아왔어.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럴수록 아무도 믿을 수 없었어…. 인간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 내가 무섭지 않다면서 나를 무서워하고, 나를 믿는다면서 경계를 풀지 않지. 지금껏 아주 많은 인간들이 그래왔듯이 모든 인가들이 그랬고, 그게 지긋지긋해 졌을 즘 너희를 만난 거야….”
가람은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끄집어내듯, 느릿느릿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믿어보기로 했어…, 너를. 너를 믿기로 했어…. 이곳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빨리 변하지만, 그래도 너는, 너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주은찬, 아프지 마. 가람은 거기까지 말하고 울음을 삼켰다. 제발, 아프지 마. 애원하듯, 아주 소중한 누군가에게 말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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