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
주은찬x청가람
비밀_1
14.09.09
처음에는 얼토당토않은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밤늦게, 다짜고짜 방에 쳐들어오더니 너는 내 손목을 쥐고 아무런 사전의 말도 없이 입을 가져다댔다. 바로 옆에는 현우가 자고 있었고, 너는 이름을 부르려는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아마 한참을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고맙다, 고 귓가에 작게 속삭인 너는 내 방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 개운하고, 멀끔한 얼굴이었다. 네가 방을 나가고 난 후, 나는 네가 물었던 내 팔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빨 자국은 이빨 자국이긴 한데, 주사에라도 맞은 것처럼 피가 새어나와, 나는 얼른 너의 뒤를 쫓았다.
너는 매화장에 홀로 서 있었다. 수도 없이 꽂힌 나무기둥의 위에 가만히 서서, 너는 휘영청 뜬 달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날 밤의 달은 평생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 찬란한 빛이 났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흔들렸다. 나뭇잎이 흔들리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고, 그를 따라 풀벌레들이 울었다. 너는 여전히 그곳에 가만히 선 채였다. 나는 조심스레 너의 이름을 부를까 하다가, 관두고 말았다. 너는 보지 못했던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너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주은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만 대답할 뻔했다. 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이름을 불렀고, 그리고 아주 느린 동작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사실 너의 동작은 하나도 느리지 않았다. 그저, 그저 내가 너의 그 모습을 더 오랫동안 눈에 담기를 원했던 것이다. 너는 나와 눈을 맞추더니, 사뿐히 땅으로 내려왔다.
“아까는 고마웠어.”
이 근처엔 짐승이 안 살더라고. 결계라도 쳐진 건지 다가오려고 하지도 않고… 너는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은 듯 말했다. 너는 알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 물론, 짐승이 들어오더라도 우리끼리 쫓아낼 수 있으니까 그 말은 이해가 간다. 사실 이해할 수 없지만 어거지로 끼워 맞출 뿐이다. 그런데 너는 왜, 아쉬워하고 있는 걸까.
너는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나뭇잎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고, 너는 낯설기만 했다. 너는 내 앞에 서지 않았지만, 나를 스쳐지나갔다. 내 어깨를 누르는 손에 힘을 주고, 내 몸이 네 쪽으로 약간 기울었을 때, 너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네 환한 미소가, 그저 어여쁘기만 했다.
“나, 사실 뱀파이어야.”
네가 고백을 한 날부터, 나는 무언가가 달라질 줄 알았다. 다시 네가 밤중에 갑자기 날 찾아와 팔을 깨문다던지 갑자기 중앙을 떠나버린다던지, 찻집의 근처에서 짐승의 시체가 발견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는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밤중에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고, 여전히 중앙에 머물렀고, 짐승의 시체는커녕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 아니다, 딱 하나 변한 게 있다. 내가 현우나, 건이나, 암튼 누구든지 둘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 어딘가에서 네가 나타나 손짓으로 말하면, 죽여 버릴 거야. 하고 경고를 하고 사라져버리곤 했다.
불안과 너에 대한 불신으로 온종일을 네 생각으로 보냈던 탓이었을까. 깊은 밤, 이불을 덮고 눕고 있노라면 너는 오늘도 오지 않는 걸까, 하고 너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따금, 내 팔을 물던 네 얼굴이 떠올랐다. 머리카락과 옷깃 사이로 살짝 드러나던 하이얀 목덜미, 아무런 망설임 없이 벌어지던 입술과, 그 아래로 드러난 이빨까지. 평소에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얼굴이 붉어지며 머릿속이 수치심과 미안함으로 가득 차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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