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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5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열병

14.09.12







그건 마치, 한 때의 열병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사랑을 했다.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하였을 뿐이고, 우리는 완전한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 매일 밤마다 몸을 섞었다. 너는 듣기에도 괴로운 아픈 신음을 내고, 내 목을 끌어안고, 날을 세워 내 등을 할퀴고, 그러면서 언제나 굵은 눈물을 흘렸다. 가쁜 숨소리와 후덥지근한 열기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면, 그제서야 죄책감이 스물스물 목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네게 미안해 죽을 것 같았다. 너는 입술을 깨문 채 소리를 죽여 울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너를 품에 안고서 거듭된 사과를 반복하는 것 뿐 이었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렀다. 너는 나를 지독하게도 미워하였지만, 나만은 그걸 사랑이라 불렀다. 


“백건, 너…”


언젠가 주은찬이 내 팔을 건드리며 물었다. 너, 혹시 가람이랑…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귀찮고, 곤란한 일이다. 하긴 바로 옆방이니 소리가 새어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래서 네가 신음을 흘릴 때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그런데 그게 들렸던 모양이었다. 주은찬에게서 들려온 말은 의외의 말이었다.


“정말로, 가람이가 그걸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주은찬은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네 손이 나를 휘감았다. 나는 다시 너의 입을 틀어막았고, 너는 고개를 돌린 채 신음을 참으려는 듯 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내 몸짓 하나에 너는 놀랍게 반응하곤 했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너는 여전히 예민한 반응이었다. 
정사가 끝난 후에, 나는 여전히 들려오는 너의 울음을 듣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너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 너의 눈을 가렸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네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땀 냄새가 섞여있긴 했지만, 분명히 너의 냄새라, 나는 한참이나 코를 박고 네 냄새를 맡았다. 너는 히끅거리며 울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네게 물었다.


“…청룡.”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이 관계를… 뭐라고 생각해?”


그것이 내 본심에서 비롯한 질문이었다. 너는 여전히 입을 닫은 채 눈물을 흘렸다. 


“…난 이걸, 사랑이라고 생각해.”


이것을 무어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그냥,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뿐 이지,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며 가만히 너의 눈치를 살폈다. 너는 여전히 진정하지 못한 채 어깨를 떨었다. 너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체격이 작은 탓에, 너는 내 품에 꼭 들어맞았다. 너는,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하고 대답했다. 순간적으로 너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그랬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네 어깨를 붙들고 입을 맞추었을 때도, 내 팔 안에 갇힌 너의 옷을 벗길 때도 그랬다. 심지어 몸을 섞는 와중에도. 너는 언제나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단 한 번도 네가 먼저 원하거나 보챈 적이 없었다. 너의 자의가 아닌 것은 오직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 뿐이었다. 너는 마치 죽어버린 것 같았다.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내 요구를 들어주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로, 가람이가 그걸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어째서 이 때에 주은찬의 말이 떠올랐는지. 나는 너를 밀어내곤 옷을 갖춰 입고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힐끔 방 쪽을 돌아보니, 너는 여전히 힘없이 늘어진 채로 내 쪽을 단 한 번도 돌아봐주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 때의 열병과도 같은 나의 욕구에 불과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 생각했던 것도, 너를 향한 그 올곧은 믿음도, 너를 그리던 나의 말과 마음까지도. 그 모든 것은 다, 한 순간에 사그라들 꿈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