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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굴레차!

현오x청가람

동경

14.09.16







신발에 짓이겨진 들꽃이 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는데. 가람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열려진 대문 틈으로, 대문 밖에서 나누는 소리가 바람에 날려 왔다. 응, 현우야, 조심하고, 아프지 말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곧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그리고 현우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현우의 손에는 작은 종이가 들려있었고, 가람은 멍하니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룡 공자, 왜 그렇게 보십니까?”


현우의 물음에, 가람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대답해놓고선, 가람은 여전히 현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현우는 속으로 의문을 삼키며 건너편 마루 끝에 앉아 가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가람은 여전히 무언가를 그리듯, 멍청한 표정이었다.


가람은 방금의 그 남자를 그리고 있었다. 이름은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현우와 비슷한 이름일 것이다. 이름이 뭘까. 형제라고 했으니 분명 이름도 비슷할 텐데,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열린 대문으로 드문드문 보인 것을 종합해보면 현우보다도 살짝 키가 컸었다. 목소리도 무척이나 낮았었고, 종이를 건네는 손목엔 손목시계라든지 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모두 배제되어 있었다. 손목 위엔 새하얀 셔츠가 있었다. 두어 번 접혀 있어서, 그 아래로 손목의 힘줄이 보였더랬다. 그가 어떤 목소리로 현우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 조금 다정한 목소리였다. 네가 걱정이 되어 죽겠다는 듯, 나는 언제나 네 생각을 하고 있다는 듯, 네가 없다면 나 또한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듯. 남자는 그렇게 현우의 이름을 불렀다.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가람은 현우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아니, 현우가 바라본 가람의 표정이 그랬다. 처음 중앙에 왔을 때에처럼 짜증스런 얼굴도 아니고, 요리를 할 때의 그 은근히 신나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막 잠에서 깬 부루퉁한 얼굴도, 샤워를 마치고 나온 후의 개운해 보이는 표정 또한 아니다. 그것은, 현우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물론 현우는 그 표정에 무엇이 담겼는지 알 수 없었다. 은찬도, 건도, 할머니도, 아마 모두는 평생을 모를 것이었다. 가람은, 속으론 부러워 죽겠다는 생각을 하며, 애써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 부친의 생각을 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저의 부친이 자신을 만나러 이곳까지 와준다면…
그리고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건너편에 앉아 가만히 가람을 바라보던 현우는 당황하며 얼른 가람에게로 다가왔다. 공자, 왜 우십니까. 현우가 소매로 얼른 가람의 눈가를 닦아주며 물었지만, 가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메어 울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의 생각을 하는 지금의 순간조차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가람은 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현우의 옷자락을 쥐고 고개를 떨구었다. 들꽃을 짓밟은 신발 코에 눈물방울이 후둑 떨어졌다. 현우는 우는 사람을 위로해 본 적이 없어서 그저 가람의 손을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가람은, 깊게 메여버린 목소리로 천천히 울음을 토했다.


“……아빠가 있으면……”


현우는 그 말을 채 알아듣지 못했다. 워낙에 조그마한 소리였고, 그나마도 울음에 섞여있었다. 가람은 차라리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들리지 않는 덕분에 더욱 큰 소리로 부친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가람은 악에 받친 듯 천천히, 비명을 질렀다.


“…저런……느낌일까…?”


응? 가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현우는 가람을 달래주지 못했고, 가람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대답해봐, 현무. 가람은 천천히 현우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가람이 옷깃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들었던 탓에, 현우의 바로 앞에 가람의 얼굴이 보였다. 가람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슬픔에 목도 잠겼는지, 그 목소리는 곱게 들어주기 힘들 정도였다. 가람은 벅찬 감정을 채 정리하지 못하고, 조용히 물었다. 그건, 대체, 무슨 기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