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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굴레차!

청가람

잠들지 못하는 밤

~여름소년~

14.09.28







소년이 있다. 잠들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잠들지 못하는 소년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소년은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악몽이 떠올라, 소년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소년은 몸을 떨며 방 한 구석에 틀어박혀 신음을 흘리고는 했다.

 

어느 깊은 밤이었다. 행복에 취해, 사랑에 취해 깊은 잠에 빠진 아름다운 밤이었다. 소년은 밤을 좋아했다. 별이 뜨고 달이 뜨고, 안개에 가린 달이 희뿌옇게 빛나는 밤을 좋아했다. 소년은 창틀에 매달려 아주 오랫동안 달빛을 맞으며 잠에 들었다. 눈을 감고, 꿈에 빠져들던 때였다. 새파랗고 높던 하늘이 새까만 색으로 칠해졌다. 소년이 그렇게나 좋아하던 검은 하늘이었지만, 그 검은 하늘에는 별도, 달도 아무것도 떠있지 않았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숨이 막혀왔다.

소년이 눈을 뜬 것은 그 때였다. 검기만 하던 눈앞에 새빨간 빛이 아른거렸다. 영롱하게 빛나던 새빨간 눈동자는 더욱 무게를 실어 소년의 목을 죄어왔다. 소년은 켁켁거리는 소리로 신음을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언젠가 소년의 어머니에게 들은 귀신이나 유령의 이야기가 떠올라 소년은 그만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계속해서 죄어오는 목에, 소년은 질끈 눈을 감으며 손을 뻗었다. 소년의 뺨에 끈적한 것이 묻어났고, 그리고 소년의 것이 아닌 신음이 흘러나왔다. 소년의 목을 죄던 손이 사라졌다. 벌컥 문이 열리고, 새하얀 빛이 쏟아 들어옴과 동시에 소년은 후두둑 눈물을 흘렸다. 그 날 아침. 소년은 숨을 삼키며 방구석에 숨어 울음을 토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제 아비의 뺨에 길게 난 상처가 보였다. 방바닥에 들러붙은 핏자국을 보았고, 그리고 숨이 막혔다. 소년은 잠들지 못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밤이 되면, 다시 한 번 제 아비가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 무서워 소년은 잠들지 못했다.

 

소년이 있다. 잠들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유독 여름을 좋아했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흐르고 지겹도록 매미가 울어대는 지독한 계절을, 오로지 소년만이 반기고는 했다. 소년은 동이 트는 그 때를 가장 좋아했다. 누구보다 먼저 문밖으로 뛰쳐나가 하이얀 색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볕을 바라보고는 했다. 그래서 소년은 여름이 영영 가지 않기를 바랐다. 한계의 한계까지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서, 소년은 매일 밤마다 소리를 죽여 울었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왔다. 다시 한 번 온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잠들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여름이 가버렸기 때문에, 소년은 다시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