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
백건
잠들지 못하는 밤
~ 겨울 소년 ~
14.09.29
소년이 있다. 잠들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눈앞에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잠들지 못하는 소년이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떠도 잠들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흩어지는 눈송이에, 소년은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늦은 봄, 드물게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조그맣고 작은 아이는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버리던 날에 태어났다. 손에 닿으면 금방 녹아버리고, 영원을 모르는 그 눈을, 소년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겨울이 오면 소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새하얀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새하얀 세상 속에 눈을 닮은 하이얀 소년이 뛰어들었다. 저 멀리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가족을 향해 샛노란 눈을 반짝이며 손을 흔들곤 하였다. 소년은 유난히 눈이 오는 것을 좋아했고, 눈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고, 눈을 맞는 것을 좋아했다. 소년은 눈이 내리는 날마다 잠에 들지 못했다. 난간에 기대어 뺨 위로 내려앉던 눈송이를 오래토록 지켜보고, 세상이 새하얀 색으로 물드는 것을 바라보며, 눈이 멎을 때까지 잠들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밤마다 눈을 빛내며 꼼짝도 하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젠가 물어왔던 아버지의 말에,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눈이 내리면 가슴이 뛰어, 살아있는 것 같아, 하고. 겨울이 지고 봄이 오면 소년은 창문에 매달려 눈이 오기만을 바랐다. 꽃나무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것이 모두 눈이기를, 여름에 내리는 빗방울이 모두 눈송이기를, 가을에 흩날리는 낙엽이 모두 눈발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계절이 돌아 다시 겨울이 오면, 소년은 다시 잠들지 못했다. 제 심장이 뛰는 소리가 여느 때보다 크게 울려서, 그 전율에 소년은 오늘도 잠들지 못했다.
소년이 있다. 잠들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그 어느 때보다 겨울이 오기를 염원했다. 눈이 내리던 밤, 소년은 마당으로 뛰쳐나가 환한 얼굴로 눈을 맞았다. 소년은 제일 먼저 깨끗한 눈길에 제 발자국을 찍고, 눈덩이를 뭉쳐 그 속에 파고들며 환한 소리로 웃고는 했다. 소년은 눈 속에 파묻혀 눈을 감았다.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좋을 텐데. 소년은 눈이 내리던 날마다 그렇게 기도했다.
다시 눈이 내렸다. 잠들지 못하는 소년은 문밖으로 홀린 듯 뛰쳐나갔다. 잠들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눈 내리는 밤이 찾아왔기 때문에, 소년은 다시 잠들지 못했다. 눈을 맞는 소년의 뒤로 새빨간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이 났다. 또 한명의 잠들지 못하는 소년은,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FANWOR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둥굴레차 :: 건가람 - 너는 (0) | 2014.10.01 |
---|---|
둥굴레차 :: 찬가람 - Dear. my love (0) | 2014.09.30 |
둥굴레차 :: 청가람 - 잠들지 못하는 밤 (0) | 2014.09.28 |
둥굴레차 :: 현오가람 - MASSAGE_7 (0) | 2014.09.28 |
둥굴레차 :: 현오가람 - MASSAGE_6 (0) | 201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