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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십분 남은 크리스마스 기념... 연성..(노양심

미생

한석율X장그래

그는 아팠고, 답지 않게 상냥했다.

14.12.25







  어느 날이었다.


 

  친척의 결혼식이 있던 날. 엄마를 따라 짐을 꾸리려던 내게,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일이나 하고 있어라, 라고. 유난히 힘든 한 주기는 했다. 내 이름으로 올랐던 아이템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장그래. 나를 바라보던 차장님의 표정에서 잔뜩 안쓰러움을 읽었고, 대신 위임을 받은 대리님과 과장님의 얼굴에서 미안함이 묻어났다. 나는 거기에 애써 웃으며 괜찮다, 라고 말했지만 일주일을 꼬박 울었었다. 홀로 남은 사무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적막이 참으로 외롭고 쓸쓸해서,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곤 하던 한 주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내내 기침을 했다. 엄마가 듣지 못할 정도로, 이불 속에 숨어 조그맣게 콜록거렸다. 집엔 엄마도 없으니, 한껏 켈록거리며 숨을 뱉었다. 자꾸만 입술 위로 콧물이 흐르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주말이라 망정이지, 평일이었으면 아마 회사에서 쓰러지지 않았을까.


  피식 웃음을 흘리며 얌전히 머리위에 물수건을 얹고,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 덮었다. 누렇게 물이 든 천장 한 구석이 보였다. 언젠가 김대리님께서 말했던, ‘방이 휑하네.’라는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덜너덜해진 기보와, 한 수, 한 수를 놓았던 노트. 끝까지 버리지 못한 그 책들이 얌전히 잠든 서랍 하나와, 앉은뱅이 책상 하나, 그리고 옷장.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느끼던 그 빈자리가 유난히 큰 것만 같아서, 그 자리에 한껏 한기가 들어찼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지독한 감기에 걸렸을지도.


  장그래, 술 한잔 하고 가지?


  이불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자니, 당신의 생각이 났다. 집에 돌아가겠다는 내 옷자락을 흔들며 내내 꿍얼대던 당신이. 무슨 자존심이었는지, 아프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장그래,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대 봐, 팔짱을 끼며 그렇게 묻는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고 허리를 숙였다. 까톡. 선비는 못 되는 모양인지, 당신에게 메시지가 왔다.



  [장그래.]

  [?]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흔한 전 연인들처럼. 당신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그걸 확인하며, 당신의 메시지 옆에 숫자 1이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리곤 곧장, 다시 한 번의 메시지.



  [안 자나보네.]



  하여간나는 짧게 혀를 차며 꾹꾹 키패드를 눌렀다.



  ……지금, , 겁니다…… 카톡하지마십쇼.”



  한 글자, 한 글자를 누르며 입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화면도 끄지 않았는지, 메시지를 입력하자마자 곧장 숫자가 사라졌다. 나는 대충 휴대폰을 머리맡에 내버려두고 눈을 감았다. 쥐죽은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 점차 세상이 아득해지고, 완전한 어둠에 익숙해졌을 무렵.


  띠리리리-


  벨소리가 울린다. 꿈에 취한 나는 짜증을 내며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한석율액정 한 가득 떠오른 석 자.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뭡니까, 한석율씨.”

  뭐긴-, 장그래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연락하지 말랬잖습니까.”

  전화하지 말란 말은 없길래.”



  씩 미소 짓는 당신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지겨운 사람.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은 쉼 없이 말을 쏟아냈다.



  있지, 요즘 장백기랑 안영이랑 사이가 꽤 이상하다니까질투나게. 그래서 말이야, 장그래씨. 우리, 내일 영화라도 볼까?”

  잘 겁니다.”



  푹 숨을 뱉었다. 내내 아릿하게 아파오던 머리는, 말 한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골이 깨지듯 선명하게 아팠다.



  조금 있다 자벌써 자려고 그래, 늙은이처럼.”

  늙은이라도 좋으니까, 끊습니다.”

  어허, 장그래, !”



  . 검붉은 화면이 반짝거리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렸다. 아예 불빛도 보이지 않게 휴대폰을 완전히 뒤집어놓고, 등을 돌려 옆으로 누웠다. 머리에 얹은 물수건이 툭 눈 위로 떨어졌다. 덜 마른 수건이, 베개를 축축하게 적셔왔다. 인상을 찌푸렸지만, 수건을 치울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검었다. 나는 천천히 그 사이로 빠져들었고, 그리고 여전히 당신이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음이었지만, 확실하게 들렸다. 그리고 곧 잠이 들었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푹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장그래, 많이 아픈가보네.”


 

  잠에서 깼을 때. 유난히 햇볕이 따가웠고, 부엌에선 답지 않은 맛있는 냄새가 났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퍽이나 다정스럽고, 내 이마를 짚는 손이 따뜻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나는 내가 여전히 꿈에 취해있는 줄 알았다.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당신의 커다란 손이었다. 내 이마에 대었다 뗀 손을 제 이마에 다시 올려보고는, , 하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한석율씨?”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말도 안 돼서, 나는 슬그머니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 장그래씨.”



  당신이 능글맞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미소를 보자마자 나는 확신했다. , 꿈이 아니로구나. 그리고, 당신은, , 어째서,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



  ……저희 집엔, 어쩐 일이십니까.”

  장그래가 아프다는데, 나라도 와야지 어쩌겠어.”



  어머님은 주말 지나야 돌아오신다며? 다 들었지. 찡긋. 당신이 윙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복 차림의 당신은 오랜만이었다. 밑단을 두어 번 접어올린 슬렉스 끝단에 툭 튀어나온 당신의 복숭아 뼈가 보였다. 바닥에 내려놓은 하얗고 불투명한 봉지엔 초록색 십자가와 함께 약국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당신은 알약 서너 개를 손바닥 위에 올리곤 물 컵을 가져왔다.



  어디가 아픈지를 몰라서 복합 감기약으로 사왔거든, 먹어.”



  손바닥 위에 캡슐 두 개와 파랗고 하얀 알약 두 개가 떨어졌다. 당신은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아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안 먹어? 라고 묻는 듯 해서 그냥 먹어주려 했지만, 머리가 아프고 손에 힘도 들어가지 않아 입을 다물고 얌전히 이불 한 쪽에 약을 떨어뜨렸다.



  “뭐야, 왜 안 먹어, 장그래.”

  “, 빈속……

  “내가 꼭 먹여줘야 먹을 거야?”

  “아니, 한석율씨.”

  “입 벌려, 장그래.”



  아뇨, 한석율씨, 됐는데요. 그렇게 말하려 벌어진 입술이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당신은 손으로 내 양 볼을 잡아 눌렀다. 입술이 벌어지고, 그 안으로 약 네 개가 들어왔다.이불 위에서 겉면이 녹아버렸는지, 캡슐이 자꾸만 혀에 붙어서, 나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장그래, 물 먹어. 물이 잔뜩 담긴 유리컵이 입술에 닿았다. 한석율씨. 다시 당신의 이름을 부르려던 나는 말도 끝맺지 못한 채 그대로 약을 삼켰다. 장그래는 손이 많이 가네. 당신이 웃으며 말했다. 입술 아래로 주르륵 흐르던 물을 굳이 제 손으로 닦아주며, 당신은 다시 내 옆에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저 빈속입니다, 한석율씨.”

  “.”



  약은 식후 30분에야 먹어야 효과가 돈단다. 쓸데없이 약 버리지 말고, 시간 꼭꼭 챙겨서 먹어. 어렸을 적부터 지겹게 들어온 엄마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금 아려오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콜록. 굳게 닫혀있던 입술 사이로 자꾸만 기침이 나왔다. 여전히 머리가 어지러웠고, 이마가 뜨거웠고, 기침을 한 탓에 목이 아팠다. 당신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어찌할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장그래, 많이 아파?”



  풀이 죽어선, 비를 쫄딱 맞은 강아지마냥. 당신은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내 손을 그러쥐었다. 당신의 손이 유난스레 차가웠다. 아니, 열 때문에 몸이 달아오른 걸지도. 당신은 쉼 없이 내 손을 문지르고, 꾹꾹 눌러대었다. 한석율씨, 뭐 하는 겁니까. 하고 물을 기력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당신을 내버려두었다. 당신이 내 손을 문지르고, 만지고, 손등을 자꾸만 제 입술에 가져다대도 손끝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물 한잔이라도 부탁하려 입을 벌리면, 당신은 왜 그래, 장그래.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하고 물어오며 야단을 떨어서, 나는 사소한 부탁 하나도 할 수가 없었다. 이따금 굳게 닫힌 눈꺼풀을 들어 올려 당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당신은 금방 울어버릴 것처럼 잔뜩 젖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석율씨.”



  응, 장그래. 가만히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은 곧장 대답했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가만히 당신에게 손을 뻗었다.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가만히 입술을 움직였다. 가까이 와 봐요, 한석율씨. 당신은 용케 그걸 알아듣고는, 몸을 낮춰주었다. 내 어깨에, 당신의 턱 끝이 닿았다. 팔을 감은 목덜미가 자꾸만 떨렸다. 하하, 그런 당신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요.”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암만 말을 해봐야 무슨 설득력이 있겠냐마는, 나는 어떻게든 당신을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장그래. 꾹 잠겨버린 목소리로, 당신이 나를 불렀다.



  “전 괜찮으니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당신의 표정이 아프게 일그러졌지만. 분명히 나는 웃고 있었다. 다 말라버린 입술이 쩍쩍 갈라져서, 그 사이로 비린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당신의 목을 끌어안은 팔을 풀고, 다시 얌전히 누웠다. 당신의 눈꺼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한석율씨, 혹시 우십니까?”



  가볍게 묻자, 당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꾹 내 손을 붙들었고, 급기야 고개를 푹 숙였다. 흘러내린 앞머리 틈으로, 당신의 콧대가 보였다. 코끝에 투명한 물이 맺혔다. 내 손을 붙든 당신의 손이 계속해서 떨려왔다. 당신은 잔뜩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였다.



  “장그래……



  네, 한석율씨. 당신의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울지 말라고 위로해주고만 싶었다. 울지 마요, 하고 말하면서 당신의 이마에 짧게 입이라도 맞추며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손이고 팔이고 아무것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짧게 짧게 대답했다. 당신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네, 한석율씨, 하고. 얌전하게. 당신의 목소리가 여전히 떨렸다. 당신의 말은 잔뜩 제 진심을 담고 있었는데, 그게 참 고맙고, 마음이 아팠다.



  “미안해, 내가.”



  장그래 대신에아파 줄 수가 없어서…… 당신이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입술을 깨물며 발음했다. 나는 거기에 다시 웃음을 흘렸다.



  “한석율 씨가 왜 미안합니까. 제가 아픈 건데.”

  “……그래도……

  “한석율씨가 대신 아파주지 않아도 돼요.”



  제가 아프면 됩니다.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입속을 가만히 맴돌던 말을 억지로 삼키며 나는 다시 한 번 당신을 향해 웃어주었다. 당신은 소맷자락으로 제 눈가를 닦아내었다. 멀끔하던 셔츠 소매가, 잔뜩 울음에 얼룩졌다. 부엌에서 냄비가 넘치는 소리가 나자, 당신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서는 당신의 어깨가, 답지 않게 잔뜩 쳐져 있었고, 자꾸만 어깨가 오르내렸다. 나는 멀거니 그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다가, 숨을 죽여 기침을 했다.


  장그래 대신에 아파줄 수가 없어서. 당신의 그 고마운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 나는 가만히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부엌에 있는 당신이 듣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로. 한석율씨. 내 예상대로, 당신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있었다. 찡하게 머리가 아파 으, 하고 신음을 뱉었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눈을 감았다. 당신이 한 말이 자꾸만 걸렸다. 머리가 아픈 것보다, 당신의 그 고마운 말이 백 배는 더 아팠다.



  “한석율씨.”



  다시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한석율씨는 아프지 말아요.”



  온전한 진심을 담은, 조심스러운 말들. 나는 행여나 당신이 들을까 조심하며, 가만가만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저 대신 아프면, 제가 너무 힘들 것 같으니까…….”



  입가에 가만히 미소가 걸렸다. 당신은 아마 한참을 앓을 거고, 그러면서 또 티를 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쓸 것이다. 그러다 내가 아파요? 하고 물어오면 아프지 않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행여나 내게 병이 옮을까 나를 멀리할 것이고, 모두가 다 잠이 든 늦은 밤에 병원엘 가 치료를 받고 약을 먹으며, 그렇게 홀로 쓸쓸하게 버텨낼 것이다. 내가 아프면 이렇게 내 영역에 침투해 나를 생각하면서. 나는 당신의 손끝 하나, 이름 한 번 부르지도 못하게 만들겠지. 그래서 난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맘껏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나 있게. 당신이 아프지 말았으면.






  “장그래, 죽 좋아해?”



  불쑥 고개를 내민 당신에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당신은 쟁반 한 가득을 채운 계란죽 하나와, 아까도 먹은 약 네 알, 물 한 잔을 가지고서 들어왔다. 한석율씨, 양이 너무 많잖아요. 조그맣게 불만을 토하자, 당신이 그런가,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많이 먹으면 빨리 나으니까.”

  “……민간요법 아닙니까.”

  “민간요법이래도 빨리 나으면 좋은거지.”



  애써 몸을 일으켰다.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이 들어서, 나는 두 팔로 어떻게든 내 몸을 지탱하고 앉았다. 당신은 그런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웃으며 죽 한 술을 떠주었다. 장그래, . 낯부끄러운 소리. 말도 안 되는 행동. 하지만 나를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당신에게 감사해서, 나는 아까와는 다르게 얌전히 입을 벌렸다. 당신은 내 입술이 오물거리는 걸 한참을 바라보고, 죽을 삼키는 소리가 나면, 괜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숟갈을 떠주었다. 나는 다시 그걸 받아먹고, 당신은 다시 나를 바라보고. 그걸 한참이나 반복했을 무렵, 나는 문득 본심을 뱉었다.



  “이거, 어디서 사온 겁니까?”

  “?”

  “맛있네요.”



  앞으로 약간 굽은 허리가 아프고, 채 식지도 않은 죽이 마냥 뜨거웠는데도, 나는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엄마가 아픈 나를 간병해줬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다. 당신만큼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손이라도 대면 내가 다칠까 안절부절하며 나를 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때에도, 오늘처럼 이렇게 보드랍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는데. 기분이 좋고, 그렇게 아파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내내 속으로 곱씹던 말이 툭 튀어나왔다.



  “한석율씨.”

  “, 장그래.”

  “아프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렇게 아프고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저도 아플 것 같아서요. 그러며 씩 웃었다. 당신의 손에 내내 들려있던 숟가락이 툭, 하니 이불 위로 떨어지고, , , 하고 말을 더듬었다. 나는 당신의 어깨에 푹 머리를 기대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 알았어, 장그래. 당신의 팔이 가만히 나를 끌어안았다.



  “, 아플게.”

  “……

  “그러니까 장그래.”



  휑하니 넓고 춥던 방안이, 왜인지 퍽이나 포근하고 따뜻하기만 했다. 이불 위로 떨어진 계란죽이 천천히 이불에 스미고, 머릿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도, 아프지 마. 당신의 커다란 손이 내 뒤통수를 쓸었다. 당신의 손이 닿은 목덜미에 한기가 들었다. 장그래, 절대로. 아프지 마.



  “알겠지?”



  어린 아이에게 약속이라도 받아내는 것처럼, 당신은 거듭해서 말했다. 알았어요, 한석율씨.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끌어안은 당신의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딱 오늘까지만 아프고, 다시는 안 아플게요.”



  그러니까, 한석율씨. 울지 마요. ? 얌전히 당신의 품에서 벗어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굵은 눈물이 툭하니 떨어져서, 나는 웃음을 흘리며 손끝으로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는 한참이나 남았지만, 꼭꼭 닫힌 문틈으로 캐롤이 흘러들어오고, 내 머리 위로 포근한 눈이 내렸다. 그러지는 않았지만, , 그런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장그래, 왜 웃어? 당신은 사소한 내 웃음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어리광부리듯 대답했다. 그냥, 좋아서요. 당신의 얼굴이 새붉었다. 평소처럼 농담도 던지지도 못하고, 당신은 잔뜩 굳어서, 그저 나를 그렇게 끌어안고만 있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날. 나를 끌어안은 당신을 오래오래 뜯어보며, 평생 동안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건 필요 없을 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