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용 원고, 청가람 글 합작(http://dimir27.wix.com/garamwrite)참여했습니다.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Distorted Love
14.10.08
1.
너를 갖고 싶다하면 너를 가질 수 있던 걸까. 네 손을 부여잡고 품에 안았으면 되는 일이었을까. 처음으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것은 하늘로 올라가 영영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후계자의 증표 따위도 아니었고, 그 때문에 놓치게 된 평범한 일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하고 조그마한 욕망이었지만, 아마 평생 가질 수 없을 것이었다. 조그맣고 여린 몸, 나를 쏘아보던 소름끼치게 새빨간 눈동자, 무심하게 툭툭 뱉어내던 그 모든 것들이 미치도록 갖고 싶었다. 이제야 고백하건데, 손안에 쥐고 아주 오래도록을 바라보며 그러고만 싶어서, 나는 그만 꿈을 꾸던 네 입술에 입을 맞췄더랬다.
물론, 너는 몰랐겠지만.
2.
백건의 눈에 가람의 모습이 밟혔다. 백건은 가람의 조그마한 몸짓과 목소리 하나에 반응하는 제가 싫었다. 그럼에도 그를 원하는 제가 싫었고, 끊임없이 그를 원하는 저를 죽여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넌 참 잔인해, 백건이 가람은 듣지도 못할 조그마한 소리로 속삭였다. 밤이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더니만, 해라도 뜨면 제 몸엔 손끝 하나도 대지 못하게 하잖아. 백건은 여전히 잊지 못했다. 그 언젠가 고기반찬을 조르려 하던 날이었다. 한참을 찾다 마당에서 빨래를 널던 가람에게 다가가 팔을 쥐었을 때, 저를 바라보던, 그 경멸에 찬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멍하니 앉아 웹서핑을 하는 가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것이 좋았다. 그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한 눈, 꼭 다문 새초롬한 입술. 가람의 성격은 평소의 태도에서도 충분히 묻어났다. 저는 너희와 하등 상관이 없다는 듯 냉정하게 선을 그어버리고, 언제나 그 먼 곳에서 홀로 외로움을 씹고 있었다. 말을 걸면 무시했고, 먼저 다정스레 이름을 불러주는 일도 없었다. 장난에 어울리는 일도, 다른 후계자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어울려주는 체를 하다가, 한 걸음 물러서고는 했다. 가람의 이름을 부르는 은찬이나, 현우, 백건의 목소리에 마음에도 없는 웃는 체를 하며. 그리고 그걸 알아챈 것은 백건뿐이었다. 억지로 띠어진 미소와 가식으로 점철된 그 속을 알아챘고,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저 눈에, 제 모습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물론 일차원적인 그런 말이 아니었다. 올곧은 눈으로, 한 가득의 진심으로 저를 사랑해주었으면 참 좋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가람은 아마 평생이 가도 모를 것이었다. 어째서 백건이 저를 그렇게나 바라보고 입술을 깨물고 품에 안기를 원하는지를.
3.
백건은 지금껏 수많은 여자에게 고백받았다. 저를 좋아해 달라는 진부한 말과 저와 사귀자는 애써 용기를 내었던 말들을 백건은 모두 거절했지만, 고개를 젓거나 거절을 하는 등의 별스런 티를 내지는 않았던 탓에 그녀들은 모두 백건과 사귀고 있다는 기쁨에 사로잡혔다. 백건에게 있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숨을 쉬는 일과도 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백건에게 고백을 하던 여학생들은 모두 수줍은 미소를 띤 채 까르르 웃었는데, 백건은 아직도 드라마에서 그 웃음소리가 들리면 소름이 끼쳤다. 언젠가 은찬이 물었을 때, 백건은 그렇게 대답했다. 다들 멍청이야, 얼굴을 붉히고 그렇게 웃으면 누구나 다 귀여운 줄 알아. 그냥 멍청해 보이는데. 그러면 곁에서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은찬이 애써 웃으며 말하고는 했다. 애들 앞에서, 그런 말은 하지 마. 상처받으니까. 그 덕에 백건은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물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백건의 눈에 띄기를 원했고, 단 한 마디라도 섞어보려 애를 썼다. TV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뺀다면 여느 아이돌과 겨루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인기였다. 책상 서랍에선 수많은 러브레터가 쏟아져 나왔고, 그 속엔 더러 평소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남학생들의 편지가 섞여 있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백건은 구토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역겹다, 라고 말하곤 했다. 진심을 짓밟던 그 잔인한 말은 반 정도의 진심과 반 정도의 장난을 섞은 채였다.
4.
어느 날 밤이었다. 넌 참 잔인한 새끼야, 하는 말을 수백 번쯤 입속에서 되뇌었던 밤. 쉬이 가람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않던 이상한 날. 들려오지 않던 잠꼬대 소리에 백건이 잠을 이루지 못하던 밤. 언제나와는 다르게 백건의 곁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백건이 아예 가람의 쪽으로 몸을 돌린 차였다. 깊은 어둠 속으로 환한 빛줄기가 비쳤고, 가람의 손가락이 조심스레 이불을 집었다. 백건이 얼른 몸을 돌리며 눈을 감았다.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고, 바닥에 휴대폰 불빛이 비치는 것이 보였고,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발꿈치를 뗀 채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발이 보였다.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히는 소리가 났다. 억지로 우겨 신은 것인지 신발이 끌리는 소리가 멀어졌고, 그제야 백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얇은 문 너머로 흔들거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백건은 가만히 손을 뻗어 문고리를 쥐었다. 언제나 꼭꼭 닫아두던 저지의 지퍼가 반쯤 내려가 있었다. 언젠가 맞추었던 그 입술이 보였고, 답지 않게 예쁘게 웃는 그 미소가 보였다. 평소와 같은 쎄한 표정도, 이따금 입가에 서리던 잔인한 미소도 없다. 그토록 바라던 그 표정이 씻은 듯 사라지고, 언젠가 제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 계집아이들처럼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건은 으득 이를 갈았다. 주먹을 쥔 손이 떨리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을 뱉었다.
“……웃지 마.”
벌벌 떨리는 목소리는, 아마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웃지 마, 청가람.”
넌 그딴 거 안 어울려. 잘게 조각난 구름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 아래 화한 미소가 번졌다. 그게 못 견디게 싫었다. 화가 났고, 당장에라도 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만 싶었다. 웃지 마, 웃지 마. 머릿속에서 반복되어 울리는 그 목소리가, 제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5.
허망해졌다. 더 이상 널 사랑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아는 넌 그렇게 멍청하게 웃지 않았는데. 세상과 등을 돌리듯 저 혼자 저 먼 곳에서 남들을 방관하듯 그렇게 시리도록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너를 사랑한 것이다. 여느 계집애들과 같이 멍청하게 웃는 네가 아니라. 아, 아니.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다. 네가 웃을 줄 안다는 걸 알았으니까. 네가 나를 향해 웃는다면, 너 또한 나를 사랑한다고 납득해도 좋은 걸까.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너는 나나, 현무에게는 웃어주지 않았다. 네가 이따금 희미하게 미소를 띠어주는 것은 오직, 주은찬 뿐이었다.
6.
그저 며칠 전부터 느껴지는 백건의 노골적인 시선이 불쾌했을 뿐이었다. 가람은 샤워를 하고 나온 백건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 딱 한마디만 하고 나올 셈이었다. 조금 당황했던 것은, 제가 생각하던 것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던 것이었다. 툭 이름을 뱉으며 문을 닫자, 백건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고, 뭘 먹고 이렇게 힘이 센 것인지 제 손목을 붙든 손을 놓을 생각을 하지를 않았다. 젖은 머리칼에서 진한 샴푸냄새가 났다. 코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툭 발등으로 떨어졌다. 머리나 제대로 말리고…, 핀잔을 주려던 가람의 입이 막혔다. 백건은 그 큰 손으로 가람의 입을 막더니만 쉿,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가람이 힐긋 시선을 돌렸다. 백건이 상체를 앞으로 숙인 탓에, 자꾸만 발등에 물이 떨어졌다. 야, 이것 좀…다시 가람이 입을 열자 백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쪽 봐, 청가람.”
그 목소리가 여느 때와는 참 달랐던 터라, 가람은 적잖이 당황한 티를 냈다. 굳이 말하자면, 분위기가 달랐다.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서있는 것 같았다. 백건은 손을 뻗어 가람의 턱을 쥐었다. 제 발등을 향한 가람의 시선과 마주치자, 그만 숨을 삼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백건은 마음을 다잡으며 가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꽉 다문 입술과 저를 노려보는 그 눈은 변한 것이 없는데, 어째서 그 날은 그렇게 예쁘게 웃었던 건지. 백건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 새에 말라버린 입술이 찢어지며 비릿하게 피 맛이 났다. 가람이 슬쩍 인상을 구겼다. 제 턱을 쥔 백건의 손이 무슨 병균 집합소라도 된 마냥, 손등을 쳐내는 그 손길은 매정하기 짝이 없었다. 치워. 짧게 중얼거린 그 말은 참으로 냉정하기만 했다. 그때 웃던 가람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또다시 그 생각이 나서, 백건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 가는데? 퉁명스런 말이 튀어나오며 문고리를 쥐던 가람의 어깨를 쥐고 그대로 벽에 몰아붙였다. 아, 가람의 입에서 짧게 신음이 터지며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랑은 상관없잖아?”
그 말이 심장 한구석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백건은 그만 붙들고 있던 손을 놓칠 뻔했다. 왜, 상관이, 없어. 꾹꾹 눌러뒀던 말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만 저 깊숙하게 잠겨버린 목소리가 참 듣기가 괴롭다고 생각했다.
“내가 널 사랑한다잖아.”
그 언젠가 책상 속에 들어있던 러브레터가 생각났다. 익숙한 이름이라 오래도록을 바라봤어야만 했다. 익숙한 이름, 익숙한 글씨. 그리고 마주친 시선 속에 흔들리던 눈동자. 우습고 역겨워서 그랬다. 역겨워, 라고 말하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게 참 볼만했다. 백건은 어쩌면, 그걸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말 구역질이 날 것처럼 싫고 거북하지만 사실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그저, 취향이 특이하네,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척을 한 것이었다. 괜히 입을 틀어막고 정말로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듯이. 그 표정을 바라보는 게 좋아서 그랬다. 경악으로 가득 차던 그 얼굴. 그리고 지금, 백건의 표정이 딱 그렇게 변했다. 잔뜩 찌푸린 가람의 얼굴과 그 속에 모멸감이 묻어났다. 입가에 시린 미소가 떠오르는 것 같아서, 백건은 그만 가람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가람이 피식 웃음을 흘렸고, 백건이 주춤거리며 한 걸음을 물러섰다.
“……그럼, 너도 날 사랑해야지…….”
투둑. 눈물인지 물기인지 모를 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람은 방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제가 애초에 들어왔던 목적인 말을 잔인하게 뱉어내곤, 아무 미련 없이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맞다, 백건, 할 말이 있었는데, 소름끼치니까 그딴 눈으로 쳐다보는 거 그만둬. 냉정하고 차가운 말. 한 치의 배려나 다정함도 서리지 않은 그 말에, 백건은 입을 다물었다. 그토록 원하던, 손에 쥐고 흔들기를 원하던 그 사랑스러움은, 영영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끝까지 매정하기만 하던 가람의 그 표정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두 손안에 가득 울음이 차올랐다. 그래, 아마 넌 평생 나를 그런 얼굴로 대해주지 않겠지. 네 생각이 났다. 너는 지독하게 예쁘고, 그리고 아마 평생을……
“……씨발.”
저를 혐오하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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