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5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꿈결의 당신
14.10.24
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 당신을 만났다. 당신은 그 널따란 품에 나를 안기어 목 아래로 드러난 연한 살에 제 흔적을 남기는 것을 퍽이나 좋아하던 사내였다. 어깨에 걸린 투명한 천이 달빛에 비치어 아름답게 빛이 났다. 샛노란 달을 등지고 서서 내 뺨을 어루만지고 당신에 취한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꼭 당신의 품에 가두어두었다. 당신은 그렇게 꿈결에 나를 찾아왔다.
하루 온 종일 사람의 술시중을 들고 그 곁에 얌전히 앉아 웃음을 팔았다. 정해진 선을 넘어오는 자가 있으면 즉시 그 가슴에 칼을 꽂아 넣었다. 나를 만지던 그들의 손길은 참으로 추악하고 역겨웠다. 당신을 처음 마주하였을 적 또한 그런 날이었다. 평소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셨고, 평소보다 많은 손님을 몸에 받았다. 초저녁에 한 분칠을 지울 새도 없이 곧장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당신이 그 긴 손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내리지 않았던가. 당신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당신의 무릎을 베고 누워, 나는 당신의 그 하늘하늘하고 보드라운 옷가지를 손에 꼭 쥐고 있는 채였다. 깊게 잠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쁘다. 안아도 돼? 그 말에 취해 나는 당신의 품에 안기었다. 어깨에 걸린 천조각에 피부가 쓸렸다. 제대로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했음에도, 나는 당신의 목을 끌어안고 당신의 귓가에 신음을 흘렸다. 정사가 끝나고, 나는 다시금 당신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당신은 다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이 곳의 모든 이가 그렇듯, 저 또한 부모가 없는 몸이에요. 초여름 풀잎이 이슬에 젖어들었을 때 이 앞에 버려진 나를 주워왔다 하더이다. 내 이름은, 청가람이에요. 당신은 아주 오랫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다 내가 다시 꿈에 빠져든 때에 이름도 흔적도 무엇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로 당신은 이따금 꿈에 젖어든 나를 찾아왔다. 채 깨지 못한 술기운이 남고, 잠에 빠져든 내 온 몸에 흔적을 남기고 나를 안았다. 입술에 진득한 키스를 해주었다. 뒤통수를 감싸 안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고, 처음 당신을 만났던 그 날처럼 귓가에 예쁘다는 말을 속삭였다. 나는 여전히 당신의 품에 매달린 채였다. 당신의 품에 안기어 당신의 몸을 받으며 당신의 품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때는 이미 당신이 사라진 후였다. 피부엔 잊고 싶지 않은 흔적이 남았다. 지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인 흔적이었다. 이름도 무엇도 알려주지 않은 당신이 남겨준 단 하나의 흔적이었다. 바람에 은빛 머리칼이 흔들렸다. 나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눈은 하늘에 뜬 샛노란 달을 닮았다. 송곳니가 달린 짐승이 먹이를 탐하듯 당신이 나의 몸을 탐하지 않았던가. 낮이면 나는 당신이 그리웠다. 침대와 화장품이 즐비한 좁은 상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에 갇히어 이름도 모르는 당신을 부르기를 수천 번. 초저녁이 되고 얼굴에 분칠을 할 때에도, 사내의 곁에 앉아 그 술을 따를 때에도, 나는 당신의 품이 그리웠다. 손님께 몸을 맡길 때에도 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당신을 겹치고 겹치면, 당신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몰랐으니 내 나름의 노력을 하려 했던 셈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이름조차 일러주지 않았다. 나는 이름 모를 당신을 떠올리며, 벌어진 다리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 역겨운 것을 보았다. 눈물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아 이불을 그러쥐었다.
때는 백여 년 전이랬다. 나라에 시체가 들끓던 때였다. 매일매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지만 그들의 부모는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생명의 빛이 꺼져갔고 더욱 많은 생명이 맺혔다. 그걸 바라보던 왕은, 그들의 욕망을 풀 곳을 찾았다. 나라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곳이었다. 남녀가 한 방에 있으면 새 생명이 태어난다 했던가. 그래서 그들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대체품을 찾았다. 나이 어린 사내아이들이 그 목적이었고, 아이를 넘기면 밥도 먹여주고 잠도 재워준다는 말에 수많은 부모가 저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왕은 약속을 지켰고, 부모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곳에 오게 된 사내아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랬건만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다. 손님들은 사내아이들의 편의를 봐주지 않았다. 고통에 울부짖었고 눈물을 흘렸다. 손님께 반항하던 자가 있으면 모두의 앞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여느 계집아이들처럼 어여쁘게 분칠을 하고 화려한 수가 놓인 천을 몸에 둘렀다. 백여 년 동안 아이들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죽지 않기 위해 살아남아야했다. 그들이 원하는 걸 모두 이뤄주어야 했다. 그것은 마치, 지옥과도 같은 일상이었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때에 당신을 만난 것이다. 죽음과도 같은 일상에 내려진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그래서 당신이 더욱 그리운 것이다. 당신에게 매달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로.
당신이 또 한 번 나를 찾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당신이었음에도 나는 당신을 쉬이 반길 수가 없었다. 겨우 두어 시간 전의 손님이 온갖 곳을 다 찢어놓았다. 흐려진 시야로 당신의 그림자가 보였다. 안개에 달이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새벽이었다. 어슴푸레한 그 속에서 당신이 천천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차마 당신을 잡을 수가 없어서, 몸을 두르고 있던 이불을 싸매었다. 잠겨버린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왜 당신은, 이 새벽에만 찾아오는 거에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 손목을 쥐는 당신의 손을 피하며 계속해서 물었다. 당신 이름은 뭔데요? 왜 항상 이 시간에만 찾아오는 거에요? 울음이 터진 눈두덩이에 입을 맞추며,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사과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답이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아니, 이름이라도 불러주기를.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품에 안고 그저 숨을 뱉어내기만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당신의 몸이 닿은 데가 아려왔다. 당신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은 어쩌면, 그저 욕정을 채우기 위해 나를 찾은 것이 아니었을까.
당신과의 정사가 끝난 후, 나는 떠나버리려는 당신의 소매를 억지로 부여잡았다. 당신을 볼 수 없었다는 그 원망보다 방금까지 당신의 품에 안기어 있던 이 몸이 더 아팠다. 잘근잘근 짓이긴 입술사이로 울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이런 새벽에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다음엔... 벌어진 입술로 슬픔이 쏟아졌다. 당신의 손이 내 손목을 쥐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듭된 약속이라도 받아내듯 당신에게 매달렸다. 다음엔, 해가 뜰 때 와요. 몸 속 깊은 데에서부터 뭔가가 찢어져버린 듯이 아팠다. 당신이 고개를 저었는지도, 어떤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잠이 들었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았겠지만 당신의 이름 한 자조차 몰랐으니 그것은 그저 바람에 불과했다. 당신이 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아마 당신은 언제나처럼 달이 뜬 이 꿈결에 다시 나를 찾아오거나, 어쩌면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당신을 보챈 것이다.
당연히 당신은 오지 않았다. 이른 시간부터 침실에 틀어박혀 손님을 받았다. 그 날엔 달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나는 그 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당신을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나는 입속에 그걸 가두어 두는 법을 몰랐다. 달이 가득 찬 새벽이 되었어요. 오늘도 당신은 꿈결이 되어야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지독하게 잔인하고 지독하게 상냥한 당신. 난 오늘도 오지 않는 당신을 그리다 꿈에 젖어버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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