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용 원고, 청가람 글 합작(http://dimir27.wix.com/garamwrite)참여했습니다.
둥굴레차!
현우X청가람
외로울 때면
14.10.17
아침에 홀로 눈을 뜬다는 것은, 썩 낯선 일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도장엘 나갔고, 엄마도 가끔 집을 비우는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차려지지 않은 차가운 식탁에서 어젯밤 먹다 남은 밥을 데워먹고, 간단하게 상을 차리고, 그리고 홀로 수저를 들었다. 그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상이었고, 언제나 이어져오던 날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공허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내게는 그 공허함이 당연한 걸로만 알았다. 난 우주에서 단둘 뿐인 청룡강림 사용자이고, 청룡…… 의 사신 후계자이고 그리고 언젠간 이 인간세계에서 영영 사라져버릴 사람이니,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믿을 건 오직 당신뿐이었고, 그래서 더욱 당신에게 매달려야 했다. 꿈속의 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목을 졸려야 했다. 그는 나를 보며 죽어버리라, 고 말했고, 그때마다 나는 울음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잠에서 깨어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이 암만 나를 잔인하게 내친다고 해도, 내게는 오로지 당신뿐이었다.
눈을 떴을 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제나 곁에서 자고 있던 백건도 보이지 않았고, 옆방에서 주은찬의 알람 소리가 울리지도 않았고, 새벽부터 수련을 해대는 현무의 기합소리도,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왜인지 그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마당엘 나가서도 여전히 조용하기만 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만이 가득한 공간. 문이란 문은 다 열어보고 창고도, 매화장도, 찻집도 모두 가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다시 마당으로 돌아왔을 땐 마루 밑에 멍걸이의 그림자가 있었고, 그뿐이었다.
야채를 씻고 밥을 지었다. 물에 양념을 풀고 야채를 썰어 넣고, 냉동실 안쪽에 있던 삼겹살 서너 줄을 꺼내 구우면서도 이상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혼자 상을 펴고, 수저를 놓고, 상을 차리는데, 무언가 명백히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밥 다섯 공기, 수저 다섯 벌, 각각의 자리에 정연하게 놓인 음식들. 그리고 홀로 밥상머리에 앉아서야, 엊그제쯤 흘려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수학여행이라고 했던 것 같았는데. 주은찬이 그렇게 말했고, 아, 공자. 저도 집에 없을 겁니다. 형님께서 급한 일이 생기셨다 하셔서, 라고 현무가 덧붙였다. 할머니의 말은 제대로 생각이 나진 않지만, 분명 집을 비운다 했던가. 가만히 차려진 밥상을 바라보았다. 익숙하게 차린 5인분의 식사는, 제대로 목 뒤로 넘기지 못한 채 모두 버려지고야 말았다. 수챗구멍에 국물을 흘려보냈다. 나물은 도로 냉장고에 넣어두었고, 끝까지 목 뒤로 넘기던 고기의 기름이 아직도 입안에 남은 것 같은 역겨운 기분이 났다. 중학교에 다니던 이래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소파에 앉아 껍질을 깐 고구마를 입에 욱여넣으며 드라마를 틀었다. 몇 개의 홈쇼핑 광고, 대출 광고, 보험 광고 등이 지나자 배우들이 얼굴이 보이고, 다시 중요한 부분에서 끊기고 광고가 이어졌다. 언제부턴가 고구마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바구니에 든 고구마 열댓 개가 보였다. 여전히 집 안에는 나밖에 없는데, 또다시 여럿이 먹을 만큼을 쪘더랬다. 도저히 못 먹겠어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욕실 옆에 둔 빨래 바구니에 든 옷을 분류하고 세탁기에 돌린 다음 얼룩이 진 이불 하나를 지고 욕실로 갔다. 욕조에 물을 채우고 이불을 넣고, 세제를 부었다. 발목에 딱 맞던 바짓단을 접어올리고 가만히 욕조 안에 발을 집어넣었다. 적당히 따뜻한 물에, 깊이 발목이 잠겼다.
빨랫줄에 널린 이불이랑 옷가지가 보였다. 열린 문으로 거실 소파 위에 먹다 남은 고구마가 있었고, 힐끗 쳐다본 시계의 시침은 2를 가리키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가 백건의 노트북을 열었다. 즐겨찾기를 해 둔 사이트를 모두 둘러보고 레시피를 찾아보고, 영화를 틀었다. 노트북을 켠 지 얼마 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끽, 하고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다녀왔어, 가람아.”
주은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 저녁 아직 준비 안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닫고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점심때 불려놓은 쌀을 꺼내는데, 그때야 그 생각이 났다. 네가 돌아올 리가 없는데. 앞치마를 벗고 마당으로 나갔다. 대문은 여전히 꾹 잠긴 채였고, 백건과 주은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허, 헛웃음이 나왔다. 중앙에 오게 된 지 겨우 반년이 채 안 됐는데, 벌써. 여전히 집안은 조용했고, 아무도 없었다. 난 멍하니 마루 끝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시끄럽고 복작거리던 집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언제나 느껴온 것이었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아침에 혼자 눈을 뜨는 것도, 집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도,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잠을 자고, 혼자 시간을 죽여야 한다는 것은, 내겐 아무런 의미도 없던 일이었는데.
흔히 사람들이 말하던 외로움이 이런 것이었을까. 내내 사람 좋은 웃음으로 내 얼굴을 부르던 주은찬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기반찬을 해달라며 조르고, 아침마다 잠꼬대로 누구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냐고 투덜대던 백건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리고, 언제나 매일 아침 일찍부터 수련을 하던, 맹한 표정으로 내 뒤를 쫓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내 곁에 있어주던 너의, 현우의 얼굴이 생각나서,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언제나 곁에 있던 그 무언가가 빠진 것만 같은 허망한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네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자, 청룡 공자,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옷깃을 잡아끌며, 공자들을 만나 참 다행이라고,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그 얼굴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멍걸아.”
가만히 멍걸이의 이름을 부르자, 내내 마루 밑에서 뼈다귀를 물던 멍걸이가 나와 무릎 위로 올라왔다. 나는 멍걸이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멍걸이에게선 오래된 냄새가 났다. 아, 멍걸이, 목욕시켜줘야 되는데. 채 씻기지도 못한 그 보드랍고 따뜻한 털에 얼굴을 묻었다. 멍걸이는 품에서 빠져나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소리로 울었고, 가만히 안겨있을 뿐이었다. 나는 더더욱 그 속에 파고들었다. 울음이 터졌다. 나는 이 외로움을 설명할 수도 없고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왜인지 오늘이 그렇게나 버거웠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왜인지 자꾸 네 이름이 나왔다. 현우야. 거듭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큰 손이 시야를 가렸다. 벌어진 지퍼 사이로 한기가 들었고 나는 그만 소름이 돋아 소리를 지를 뻔했다. 놀라셨습니까? 정신이 제대로 들기도 전에 그 목소리가 들렸다. 노을이 지던 하늘은 씻은 듯 사라지고 하얀 색으로 물들고 있는 하늘이 보였다. 너는 내 어깨를 잡아 흔들며, 조용하게 내 이름을 속삭였다. 순식간이었다. 시야가 온통 네 얼굴로 가득 차고, 지금껏 꾹 눌러 담던 그리움이 터졌던 건. 네 목을 끌어안고 네 이름을 불렀다. 너는 당황한 듯 내 이름을 불렀고, 곧 손을 뻗어 내 등을 쓸어주었다.
“공자. 울지 마세요.”
다정함이 서린 네 말이 어째서 그렇게 마음이 아팠는지. 어쩌면 그 다정함 때문에, 네 그 다정함이 좋아서, 외로울 때마다 네 이름을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넌, 계속 내 옆에 있어. 입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네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네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떠나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영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내가 바라보는 곳에 항상 네가 있었으면…….
나는 네가 떠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 마치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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