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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파도의 하얀 조각들, 숨소리, 허공

14.09.12







"나는 전생에 인어였을 거야."


새파란 바다를 등지며, 너는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그래서 이렇게 파도가 칠 때마다 가슴이 뛰는 건가봐. 너의 그런 꿈같은 말들을 한참이나 듣고 있다가, 왜 산호나 물고기가 아니라 인어야?하고 물어보면, 너는 잠깐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가볍게 대답했다.



"그편이 더 로맨틱하잖아."


어쩌면. 어쩌면 단순히 너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옆의 내가 더욱 초라해지는 것만 같아서, 나는 내심 네가 웃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너를 좋아했다. 너에게는 언제나 환한 빛이 나고 있었고, 그 옆에 있으면 나도 그 빛을 나누어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네 곁에 있으려 노력했던걸까.
너는 언제나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모든 사람들이 너를 좋아했고, 어여쁘고 상냥하기까지 했다. 그런 너를 누가 미워할 수 있었을까. 계절이 돌아 다시 여름이 오면, 너는 도시로 떠난다고 했다. 나는 마냥 부럽고, 드디어 네가 사라졌음을 기뻐하고 있었는데, 너는 그런 나를 비웃듯 내 손을 붙들며 너랑 죽 여기에 있겠다고 한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하고 사과했다. 갑자기 내 자신이 역겹게 느껴졌다. 너는 이미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었고, 나는 깊은 바닥까지 추락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아마도 너는 그럴 것이다. 지금처럼 마음씨가 곱고 상냥하게 자라 사랑받으면서, 화사하게 피어난 꽃송이들에 파묻혀 행복하게 살 것이다. 나는 이 구역질 나는 곳에서 평생 바다냄새만 맡으며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리겠지. 너는 매일을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괴로움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래서 네가 미웠다. 나는 평생동안 행복할 수가 없을텐데 너는 지금보다 더욱 행복해질테니까. 네가 미치도록 미웠다. 매일밤 너의 죽음을 바라고 너를 증오했다. 전생에 인어였을거라는 꿈같은 말만을 늘어놓는 너를 보며, 솔직히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네게 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는 내가, 내가 제일 미웠다.


"네가 수영을 잘 하는 것도?"



언젠가 물었을 때, 너는 응, 하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럼 아무리 깊은 데라도 빠져나올 수 있겠네? 나는 절벽 밑으로 너의 등을 떠밀었다.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네 눈 속에 담긴 나는 웃고 있었는데, 너는 믿을 수 없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너의 목소리에, 간간이 울음이 섞여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절벽 밑으로 파도가 거칠게 일렁이는 것까지 확인하고나서야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네가 정말로 인어였더라면, 아무 탈 없이 돌아올 거야."



자기 전에도,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되뇌었다. 눈앞엔 파도가 일었고, 허공을 가르던 너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너는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죽인것이다. 너의 부모님은 하루 온 종일을 울면서 보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너의 이름을 불렀다. 의외로 사람들은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방에 틀어박혀 가만히 앉아있노라면 괜찮냐 물으며 걱정하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내게로 향한 관심은.





네가 사라진지 사흘이 되던 날, 너는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형체가 되어 파도에 떠밀려왔다. 거봐, 넌 전생에 인어도 뭣도 아니었잖아. 나랑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너를 바라보는데, 너의 형체는 생각보다 처참하지 않았다.
곱게 감은 눈, 헤쳐서 풀어졌을 뿐인 옷, 마치 언젠가 너와 함께 보았던 동화책의 공주님처럼 어여쁘게 잠든 너를 바라보며, 나는 왈칵 눈물이 났다.
네 주변에 이는 파도의 하얀 조각들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너를 바라보던 나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것 같았다. 너는 그 모습조차 어여쁘구나, 그러자 나는 그만 죽고싶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