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네가 그러면 안되는 거였어, 갈라진 목소리, 허망
14.09.03
어김없는 새벽 두 시였다.
또 한 번 꿈속에 네가 나왔다. 너는 그 언젠가처럼 난간의 끝에 서서 하염없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다가서면 너 또한 난간을 붙든 한 손을 놓으려했다. 나는 너를 설득하려 했고, 너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손을 놔버렸다. 수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나는 그렇게 잠에서 깼다.
아직도 손을 뻗으면 내 곁에서 너의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이름을 부르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돌아봐주고, 언제나처럼 손을 맞잡은 채로 잠이 들 것 같았다. 책갈피를 겸하여 책장 사이에 인화된 사진을 끼워 넣는 것도, 설탕과 소금이 헷갈린다며 병마다 이름을 붙여놓은 라벨지도, 편의점에 갈 때마다 네가 좋아하던 간식을 사왔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너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네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버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너는 누구에게나 상냥했고, 사랑스러웠고, 모두를 사랑했다. 너의 주위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모두가 너의 이름을 불렀고, 모두가 너를 사랑했다. 너는 요리를 할 때에도, 빨래를 갤 때에도, 언제나 내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교내의 가십거리, 누구와 누구의 연애나, 오늘 먹었던 음식과 강의에 관한 것까지 모조리. 나는 단 한 번도 신경을 쓴 적이 없었지만, 너는 휴학을 원했던 나를 걱정해 준 것이다.
우리는 유별난 쌍둥이였다. 한 날에, 겨우 몇 분 차이로 태어나 지금껏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었다. 우리의 시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렀다.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었고,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너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난 괜찮아, 아무것도 필요 없어, 너만 내 곁에 있으면 다 괜찮아, 하고.
그리고 너는 거짓말처럼 죽어버렸다. 나에겐 단 한 마디도 해주지 않은 채로, 그렇게 싸늘한 시체로 발견 되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드문드문. 네가 죽어버렸다는 그 사실만으로 복잡한 머릿속으로, 곁에 다가온 의사가 하는 말들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과다 복용, 우울증, 정신과 상담, 항우울제, 구토, 망상… 나는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유감입니다. 의사는, 냉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의사의 말만은 똑똑히 기억이 나는데. 너의 소식을 들은 친구들에게는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 걱정스러운 목소리, 자신은 이걸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 곤란해 죽겠다는 듯, 그들은 형식적인 말만을 남겼다. 장례식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와 소리를 높여 울었지만 나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네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다. 사진 속에서와 똑같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내 목을 끌어안고 소릴 내 웃으며 많이 놀랐지, 하고 어디에선가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네 죽음을 믿지 못한다. 그 언젠가 난간의 끝에 서서 이런 데에서 떨어지면 많이 무섭겠지, 하고 웃었다. 나는 얼른 너를 난간의 안쪽으로 끌어당겼고, 나는 너를 아주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그 때에도 나는 위험하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 예상대로, 네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더랬다.
두어 달이 지나서야, 나는 너의 흔적을 되짚을 수 있었다. 표지가 닳도록 읽던 책, 둘이서 찍은 사진으로 한가득 채운 침대 머리맡의 벽, 함께 앉아 시간을 보내던 소파, 네가 즐겨 입던 원피스와 언젠가 꼭 신을 거라며 신발장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는 하이얀 구두까지. 서랍에선 디지털 카메라와 손바닥만한 다이어리가 나왔다. 버리기 아깝다며 남겨둔 잉크가 다 마른 펜도, 조그맣게 네 이름이 박힌 손수건도 있었다. 그리고, 달그락거리며 손안에 잡힌 것은 라벨이 떼어진 작은 약통이었다. 이런 게 있었던가, 하며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은은한 단내가 풍겼다. 손바닥 위에 떨어진 약은 손톱보다도 작은 새파란 색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네가 단 한 번이라도 내게 약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던가. 요 몇 달, 네가 병원엘 다녀온 일이 있었나? 너는 왜 이 약에 대해 단 한 번도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왜. 대체 왜 너는 나를 속였을까. 아니, 어쩌면. 단 하나라도, 내가 너를 믿을 만한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너를 믿었을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런데 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네가 내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모든 걸 공유했다 믿었던 너와 나의 사이에 비밀이 생겼다. 나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고, 나 또한 너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다 생각한 나의 믿음이 깨진 것이다. 왈칵 목구멍까지 역겨움이 차올랐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모든 것을 토해내었다. 몇 번이나 속을 게워내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지금껏 믿고 있던 그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옥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계단에선 철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난간을 붙든 채 네 생각을 했다. 내게 왜 비밀을 만들었는지, 왜 그렇게 죽어버린 건지. 예전 같았으면 쉽게 답을 내리고 납득할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무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지독하게도, 나는 끝까지 네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울음소리 말고는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뱉지 않았다. 마치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 짐승처럼 끅끅거리는 소리만 겨우겨우 뱉어내다가, 천천히 너의 이름을 불렀다.
“………”
짐승 같은 울음소리에, 너의 이름이 섞였다. 갈라진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듣기 싫었다. 나는 다시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내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너의 이름을 부를 목소리도, 너와의 추억도, 너를 향한 올곧은 믿음마저도.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고 가루가 되어서, 그렇게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우리가 평생토록 서로에게 진심일 줄 알았다. 서로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그렇게 평생 동안 서로를 믿으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네가……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평생토록 서로에게 진실일거라 믿게 한 것도, 내가 그렇게 믿게끔 만들었던 것도, 비밀을 만들지 않겠다 약속한 것도 너였다. 네가 그랬다. 내게 그렇게 말하며 너를 믿게 만들었으면, 적어도 너는 그러질 말았어야지. 너는 그래선 안 됐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속이고 산다지만 너와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 믿었는데.
지금껏 단 한 번도 너를 원망해 본 적이 없다. 너를 질책하고 책임을 떠넘기며 슬퍼해본 적조차 없다. 그런데 처음으로 네가 미웠다. 난생 처음으로 네가 미웠고, 원망스러웠으며, 모든 걸 너의 탓으로 떠넘기며 울고만 싶었다.
내 손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것마저 사라져버렸다. 나는, 천천히 너를 따라갔다. 난간을 붙잡고 아주 느리게 그 너머로 넘어갔다. 가만히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았다. 아득한 높이였는데,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는 것은 순 거짓말이다. 나는 오직 너를 향한 원망만을 담고 있었다.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서, 주머니에 넣어둔 약통을 꺼냈다. 그리고 네가 그러했듯 파랗고 조그마한 약을 삼켰다. 하나로는 모자라 두 개를 먹었고, 그것도 모자라 세 개를 삼켰다. 그 수는 점점 늘어만 갔고, 약통이 바닥을 보인 순간, 난간을 붙든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너는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역시.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너를 불렀다. 나는 한 손으로 너의 뺨을 어루만지고, 네 손을 꼭 쥐며 웃음을 흘렸다. 나는 조그마한 소리로 속삭였다. 이거, 생각보다 별로 안 무섭다. 별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하늘이 새하얗게 변하고, 아득하게 멀어지고, 그리고 네가 좋아하던 그 노랫소리가 들렸다.
'ORIGI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5 :: 파도의 하얀 조각들, 숨소리, 허공 (0) | 2014.09.13 |
---|---|
004 :: 죽은 금붕어, 끈적한 자괴감, 사실 상관없잖아, 발악 (0) | 2014.09.13 |
002 :: 사랑니, 21살의 여름, 세 살 차이 (0) | 2014.09.13 |
001 :: 제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요, 권유, 회유, 강요, 부러진 이빨 (0) | 2014.09.13 |
단어 다섯개 :: 배탈 메이플 라이터 가슴 섹스 (0) | 2014.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