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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죽은 금붕어, 끈적한 자괴감, 사실 상관없잖아, 발악

14.09.04







결혼하게 되면 마당이 있는 집에 살자. 네가 좋아하는 큰 개도 기르고, 조그마한 화단도 만드는 거야. 거기서 방울토마토랑 상추도 키우고, 방이 하나 남으면 거기를 우리 작업실로 쓰자. 너는 거기에서 글을 쓰고, 원고가 완성되면 제일 먼저 나한테 보여줘. 만약에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우린 많이많이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새끼손가락을 걸던 때가 있었다. 사귀자는 말에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이던 때가 있었다. 너와 함께 살기로 마음먹은 날엔 이제부터는 매일 얼굴을 볼 수 있겠네, 하고 기쁜 듯이 말했다.





기지개를 펴며 침대 쪽을 돌아보았다. 너는 등을 돌린 채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자고만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돌아볼 때마다 눈이 맞았다. 우리는 함께 웃었고, 너는 내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내가 침대로 돌아가면 그제야 나를 꼭 끌어안고 잠에 들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너는 작가가 된다며 여기저기에 원고를 내고 있었다. 나는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네 글을 읽었고, 너를 응원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자 너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함께 살게 된 지 햇수로 6년이 지났으니,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지는 4년이 되었다.

함께 부대끼며 산 6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만들었다. 너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은 아무것도 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죽 다녀오던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고, 너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나는 너와의 결혼을 상상하지 않게 되었다.

휑하던 벽 한쪽에는 긴 수조가 있었다. 너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건물 주인에겐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너는 내가 키우고 싶어 하던 금붕어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우리 둘 만의 공간이라 생각했던 그 집에서 우리는, 어느새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사흘 동안 출장엘 다녀와야 했다. 되도록 오래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만들었고, 음식물 쓰레기를 대신 내놔달라 부탁하고, 금붕어에 밥도 줘야한다고 거듭해서 강조했다. 내가 몇 번이나 알았지? 하고 물은 말에 알겠어, 하고 대답했다. 나는 너를 믿고 있었다. 6년의 시간을 보내며 지금껏 쌓아온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후에, 나는 그 시간이 모두 부질없었음을 깨달았다. 집안에선 지독한 냄새가 났다.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은 손을 댄 흔적이 없었고, 방바닥엔 일회용 포장용기들이 굴러다녔다. 수조 속의 금붕어는 모두 배를 드러낸 채 수면에 떠 있었다. 언젠가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금붕어 몇 마리가, 죽은 금붕어의 살을 뜯어먹던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을 수가 없어 하염없이 그걸 바라보고만 있었다. 돌아온 집에 너는 없었다. 나는 죽은 금붕어를 모두 건져내 변기에 흘려보내고, 그 앞에 쭈그려 앉아 수십 번이나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수조 안의 물을 모두 버리고, 텅 빈 수조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제야 문이 열리고, 네가 돌아왔다. 너는 들뜬 목소리로 통화를 하다, 나를 보고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저 얼굴은 익히 알고 있다. 나와 처음으로 결혼을 꿈꾸었을 때, 그 때 네가 짓던 표정이었다.

 

나는 발악하듯 악에 받친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너는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런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6년을 함께 살았고, 8년을 사귀었지만, 단 한 번도 네게 이정도로 실망해 본 적이 없었다. 지독한 악취는 집이 아니라 너에게서 풍기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수도 없이 소리를 질렀고, 아주 오랫동안 울었다. 그리고,


 

지금껏 몇 마리가 죽어도 신경도 쓰지 않더니 이제야 이러는 이유가 뭔데?”

 


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끈적한 자괴감이 발목을 휘어 감았다. 어딘가의 바닥으로 끌려들어가듯 추락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금세 눈물이 났다. 내가 지금껏 이런 녀석이랑 결혼을 꿈꿨단 말이야? 더 이상 네게 손대고 싶지 않았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고, 너는 여전히 역겨운 말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고, 끝끝내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를 막았다.

너는 그렇게 나가버렸다. 나는 집안에 남아 쓰레기를 버렸고, 꾸역꾸역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을 입 속에 밀어 넣었다. 새벽 내내 잠에 들지 못하고 수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 휴대전화 너머에 있는 상사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월차를 냈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죽어버린 금붕어들을 생각했다. 손가락으로 유리를 톡, 하고 치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다가오기도 했다. 불이 꺼진 깊은 밤, 수조 속에서 새어나오는 하이얀 빛과 기포가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 잠에 들었다.


저녁엔, 너에게 전화가 왔다. , 집 앞 가로등 밑에 있어. 네 말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너는 이 쪽을 쳐다보지 못하고 땅에 시선을 박은 채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단추가 풀어진 셔츠 깃 사이로 목덜미가 보였다. 한 때의 난, 너의 그런 부분에 반했었는데. 너는 미안하다고 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어. 내가 경솔했어. 그저 의미 없이 반복될 뿐인 말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헤어지자.”


, 더 이상 너와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너도 사실은, 상관없잖아? 나의 말에, 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래. 너는 그렇게 납득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