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걸로 연성좀해줘(@keYWord)님의 트윗을 참고하였습니다.
밤
14.09.27
아주 깊은 밤이었다. 창가에 자잘하게 매달린 유리조각들이 부딪히는, 어여쁜 소리가 나는 밤이었다. 자기 전, 엄마가 내 이마에 수없이 키스를 하며 읽어주던 동화책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엄마는 내 손을 잡은 채 깜빡 잠이 든 밤이었다. 바로 방 밖에서 들리던 쿵쾅거리는 발소리와 쉴 새 없이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에 엄마가 깨어났고, 곧 내 어깨를 흔들었다. 아가, 일어나야지. 아직 깊은 밤이었는데도, 엄마는 그렇게 다정스레 말하며 나를 깨웠다.
깊고도 어여쁘던 밤은 곧 슬픔으로 가득 차버렸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봐야만 했다. 목에 맨 넥타이가 갑갑하고, 그리고 온통 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게 그렇게나 이상해보였다. 하이얀 옷을 입은 여자에게로 다가가, 아버지는 그 여자의 손을 붙들고서 아주 오랫동안 눈을 감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엄마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서, 조용하게 속삭였다.
‘―씨의 장례식이란다.’
이름이 굉장히 길고 어려웠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장례식이 무엇인지,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이 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는지 설명해주지도 않은 채, 엄마도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저 엄마가 우는 걸 바라봐야만 했다. 엄마는 소리를 죽여 어깨를 떨었다. 입술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만히 엄마의 옷깃을 잡았고, 그리고 엄마에게 수도 없이 울지 마, 하고 위로하며 결국 나도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눈물이 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이름 모를 그 사람을 위해 울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일 뿐, 나는 그저 울음을 토하며 엄마를 끌어안고 있었다.
엄마는 한참이 지나서야 울음을 그쳤고,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테라스에 데려다놓고서, 여기에서 잠시만 기다려, 금방 아빠를 데려올게. 하고 사라져버렸다. 겨우 얇은 커튼 하나가 쳐져 있을 뿐인데, 마치 세상이 갈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쪽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커튼 너머엔 여전히 사람들이 끅끅대는 슬픈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만히 제자리에 앉아, 귀를 막았다. 그 때 처음 알았다. 다른 사람의 울음을 듣고 있노라면 나조차도 슬퍼진다는 걸.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의 그 행복했던 기억을 잊고 싶지가 않아서, 나는 사람들의 울음을 듣지 않는 쪽을 택해야 했다. 곧 울음소리는 멎었고, 나는 귀를 짓누르던 손을 떼었다. 손이 떨어지자, 웅-하고 뭔가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울음소리였다. 엄마를 닮은 예쁜 목소리. 그래서 시선이 갔다. 난간을 붙들고, 귀를 기울였다.
테라스의 아래엔, 하얗고 노란 꽃이 핀 정원이 있었다. 별도, 구름도 없이 얇은 초승달만이 뜬 밤이었는데도, 그게 똑똑히 보였다. 하얀 꽃을 한아름 끌어안은 여자아이가 보였다. 깊게 눌러쓴 검은 챙모자 아래로, 잘 정돈된 금빛 머리칼이 보였다. 물결이 치듯 구불거리는 머리칼 아래로 꽃보다도 하이얀 피부가 붉게 물들고, 핏기가 가신 입술사이로 울음이 새어나왔다. 검은 원피스 자락이 무릎 아래에서 가만히 흔들렸고, 여린 발목을 감싼 구두가 달빛에 비쳐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아이는, 조그마한 소리로 울다가, 품에 안은 꽃다발을 놓치고, 그리고 다시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게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검은 옷차림과 상반되는 투명한 피부가, 울음에 눈가가 붉어지고, 뺨이 붉어진 게, 그렇게나 어여뻤다. 차마 말을 걸 자신이 없어서, 나는 그것을 그저 오래오래 바라만 보고 있었다. 히끅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곧 손등으로 눈가를 부비는 것이 보였다. 바닥에 떨어진 꽃다발을 다시 끌어안으며, 아이는 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멈추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달을 바라보는 그 푸른 눈동자에, 나는 그만 숨을 삼켰다. 다시 흐윽, 하고 울음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그걸 견디지 못하고 커튼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주위는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밖엔 없었고, 엄마와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찾을 수 없었지만, 왜인지 그 아이의 울음을 듣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나는 차라리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네가 나를 위해 울어준다면, 지금처럼 네가 나의 이름을 수도 없이 부르며 울어준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차라리 죽어버려도 좋다고. 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던 마차 안에서,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아버지는 턱을 괸 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고, 엄마는 내 머리를 쓸어내리며 졸립진 않니? 하고 언제나의 달콤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나는 찬찬히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켜 엄마의 목을 끌어안았다.
“…엄마.”
얘가 왜이래. 엄마는 피식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엄마의 눈은, 아직까지도 붉게 물들어있었다. 끌어안은 목에서는 엄마의 냄새가 났다. 나는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엄마를 불렀다.
“…나 있지, 엄마보다 더 예쁜 사람을 봤어.”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도 작은 소리로 웃었다.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나는 아까 보았던 그 아이를 그리고 있었다. 눈이, 파랬는데, 그게 너무 예뻤어. 조그마한 소리로 중얼거리며, 꽃을 닮은 그 아이가 떠오르고, 그리고 그 울음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만 마음이 아팠다.
아주 깊은 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슬픔에 젖은 밤. 풀벌레들이 울고, 나무에 앉은 새들이 울었다. 별들도 붉어진 눈이 창피해서 안 나오는 건가봐. 얇디얇은 초승달만 뜬 검고 검은 밤이었다. 테라스에서 본 아이가 떠나지 않던, 내가 죽을 땐 부디 그 아이가 울어주기를 바라던, 그런 시리고 아픈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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