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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주라고 표기했으나 사실 별로 상관은 없는.. 백청주, 청주백, 백주청.

둥굴레차!

청가람X백건X주은찬

이제는, 더 이상

14.11.18







내 세상의 중심은 언제나 너였다. 나의 곁에는 네가 있었고, 내 곁에는 네가 있었다. 어리고 어리던 나는, 그게 당연한 걸로만 알았다.


방학이 되면 언제나 멀리 있는 너의 집엘 찾아갔다. 너와 길거리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수련을 하고, 저녁이면 아주머니가 직접 잘라주시던 과일을 먹다, 너와 한 침대에 누워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 한 쪽이 먼저 잠들어버리면 따라 잠들기를 수 년. 나는 더 이상 어리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너의 곁에 있는 내가,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린 친구지, 주은찬. 그렇게 말하는 열여덟 살의 네가 참으로 찬란해보여서, 나는 수천 번이나 입속으로 삼킨 좋아한다는 말을 아마 영영 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게 네게 고백하는 걸 포기해버렸다.

 

 

 

 

참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의 사이는, 단 몇 개월 사이에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다투었다느니 싸웠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는 애초에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너와 함께할 나의 미래를 꿈꾸었고, 너 또한 그런 미래를 꿈꾸었지만, 나는 너의 연인이 되고 싶었고, 너는 그저 나의, 친구, 일 뿐이었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너의 품에 안겨 너와 수도 없이 입을 맞추는 상상을 하는 동안, 너는 단 한 번도 그런 상상을 하지 않았고, 매일 밤 너를 그리며 네 이름을 뱉어내던 그 긴 시간동안 너는 단 한 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퍽이나 비참한 것이었다.


어느 밤. 그 날도 언제나처럼 너의 꿈을 꾸며, 야속한 너를 부르며 잠에서 깨는데, 벽 너머로 애달프게 너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가. , 거언. 백건, 하고. 가쁘게 너를 부르는 그 목소리에 눈물이 날 뻔했고, 그에 답하듯 거친 숨을 뱉는 네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만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얼른 겉옷을 챙겨 입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방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고, 얇고 얇은 문으로 검은 그림자 두 개가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다. 겹쳐진 두 개의 그림자가, 자꾸만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게, 연신 그 입으로 서로의 입술을 물어뜯는 게 보여서, 나는 그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가 영원할 줄로만 알았다. 내 곁에 네가 있는 게 당연하고, 네 곁에 내가 있는 게 당연하고, 우리가 그렇게 함께일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그 세계가, 나는 영원히 지속될 줄로만 알았다. 잔인하게도, 그것은 그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이제 네 곁에 내가 끼어들어갈 자리는 없다. 내가 끼어들기엔 그 사이는 너무 비좁고, 좁은 틈 하나도 나지 않아서, 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슬픔에 젖어 엉엉 울어버린 것이다. 곧 문이 열리고 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주은찬, , 주은찬. 거듭해서 내 이름을 부르는 네가 왜 그렇게나 야속했던지. 저기 문턱에 서서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청가람이 보였다. 언제나 곱게 잠그고 있던 져지의 지퍼가 제대로 잠기지 않았는데, 그 사이로 군데군데 이빨로 깨문 자국이 나 있는 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심술이 났다. , 왜 울고 있어, 어디 아파? 내 어깨를 훽 끌어당기며 묻는 네 어깨를 잡고, 나는 그렇게 네게 입을 맞추었다. 주은찬. 내 이름을 부르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얽어냈다. 네 입술 안쪽을 한껏 잘근잘근 깨물고 핥으며 힐긋 눈을 굴려 청가람을 바라보았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경멸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 얼굴이, 퍽이나 우스워보였다.


이 미친! 나를 밀어내며 소매로 입술을 부벼 닦는 네가 미워서, 나는 다시 울음을 쏟아냈다. 주은찬, 너 왜이래? 너의 표정은 이런 걸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처럼 경악스럽고 당황스런 얼굴이라, 나는 눈물을 닦으며 꾹꾹 눌러둔 말들을 겨우겨우 뱉어냈다. 왜 이러긴. 난 너랑 친구 아니야, 백건. 뚝뚝 울음이 묻어나는 원망스런 말. 네가 그걸 끔찍하게 여긴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난 너랑 친구 안 해. 넌 단 한 번도 내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달빛에 비친 네 새하얀 얼굴이, 점차 굳어가고 있었다. 좋아해, 백건. 너는 내게서 그렇게 멀어졌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내 좋아했었어. 우린 친구지, 주은찬. 열여덟 살의 네가 내게 그렇게 말하던 것이 떠올라서, 가슴 한구석이 미치도록 아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