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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5

소재주신 ㅍㅆ님 감사합니다.

건가람인데.. 살짝 백청주같기도 하궁...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관계의 끝

14.11.21








역겨운 새끼. 넌 진짜 역겨운 새끼야, 백건.

 


날카로운 칼날로 제 손목을 긋던 날, 야속한 너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버렸다. 그 어떤 생각도 들지가 않아서, 나는 쓰러진 너를 붙들고 어떻게든 네 몸을 일으켜세우려 노력했다. 동그란 네 뒤통수를 바짝 가슴에 품었다. 하얗기만 하던 이불이 붉게붉게 물들어갔다. 나는 그저 네 이름을 부르기만 했다. 청룡, 청룡, 수도 없이 너의 이름을 부르며, 더 이상 눈을 뜨지 않는 너를 품에 안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들 것에 네가 실려나간 것은 한 시간이 꼬박 지난 후였다. 삼십분 전. 너를 끌어안은 채 우는 나를 본 주은찬은, 덥썩 내 멱살을 쥐고 날 밀치더니 너의 손목을 으스러지게 붙들었다. 휴대전화를 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그 모습이 퍽이나 다급해보인 것은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 여기 고운 산……, 그 찻집이요, . 아니, ……그게 아니라, 자살……시도를…… 주은찬은 울먹이는 얼굴로 전화를 끊더니 가만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는, 투둑 눈물을 흘렸다. 그러게 백건, 내가…… 주은찬은 거기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여전히 정신을 놓은 너를 안아들고 어딘가로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자리에 앉아, 그런 주은찬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다시 너의 이름을 불렀다.

 


…….”

 

 


 

 

 

너를 보았다. 너는 가만히 눈을 감고,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유순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는 채였다. 네 뺨을 어루만지려 들었던 팔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백건. 가람이한테 손 떼.”


 

주은찬의 목소리. 나는 거기에 팔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주은찬은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를 노려보는 그 눈은, 어릴 적부터 계속 봐오던 그 표정과는 전혀 다른 싸늘한 표정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주은찬이 가만히 다가와 나를 밀치고는, 가만히 너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너 때문이래.”

?”

가람이가 이렇게 된 거, 네 탓이라고.”


 

입가에 걸린 그 미소가 퍽이나 써 보였다. 나는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멀거니 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주은찬이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왜 그랬어, 백건. 내가, 그만 하라고, 했잖아. 안타까운 표정으로 네가 울 것만 같아서, 나는 그만 등을 돌려버렸다. . 문이 열리고 성큼성큼 복도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얌전히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의 안에서, 나는 손톱을 깨물고 입술을 뜯어내며 눈을 감았다.

 

 

 

 

 

좋아해. 그렇게 말했을 때, 네가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청룡, 니가 좋아. 너는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네 손목을 쥔 내 손을 떼어냈다. 지랄…… 짧게 뱉어낸 그 말이 참 미워서,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네 입술에 그대로 입을 맞추었더랬다. 나를 밀어내는 너의 손목을 붙들고, 한 손으로 네 뒤통수를 끌어당겼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그 틈이 더 이상은 가까워질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나는 굳게 다문 네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 그 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네가 짧게 욕짓거리를 뱉어냈다. 잔뜩 주름이 잡힌 네 미간도 보았다. 홱 내 품속에서 빠져나가더니, 네가 지긋지긋한 표정을 지으며 소매로 입술을 닦았다. 더러운, 새끼. 참을 수가 없었다. 네가 나를 고작 그런 취급을 한다는 게. 내가 네게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게. 도망치는 너를 붙들고, 어떻게든 너를 바닥에 자빠뜨려, 그렇게 얇은 져지 아래로 손을 우겨넣었다. 싫다는 너의 입을 틀어막고, 네가 움직이지 못하게 네 위로 올라타, 그렇게 천천히 네 살을 쓰다듬으며, 수도 없이 입을 맞추어댔다. 네 손끝에서부터 시작해 손목과 팔 안쪽, 깊게 패인 쇄골,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 파르르 떨리는 너의 눈썹 위에까지, 나는 선을 그리듯 천천히 곳곳에 입을 맞추며, 끝내 너를 품에 안았더랬다.


그것은 마치 어릴 적에 부모님이 몇 번이나 거듭해 말하던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을 때와 비슷했다. 그에서 비롯되는 배덕감과 남에게 들키지 말아야 하는 그 아슬아슬함의 맛을 본 나는, 한 번에 그칠 수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는 너를 품에 안았다. 싫다는 네 손목을 붙들고, 네게 입을 맞추고, 그리고 너를 품에 안고, 지겨운 얼굴로 옷을 추슬러 입는 너를 바라보며, 잔인하게도 웃어대었다. 이따금 너는 잔뜩 흐트러진 표정으로 제 몸을 내려다보고는 했다. 온 몸 구석구석에 난 짙은 자국들과 여전히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그 기분 나쁜 진득한 덩어리들을 바라보며, 뚝뚝 눈물을 삼켰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야했기 때문에, 나는 너의 기분이나 그 지친 표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다시 한 번 너를 너를 품에 안고는 했다. 너는 픽 웃음을 흘리며, 우습게도 먼저 내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춰왔다. 너의 눈엔 그 아무것도 담겨있지가 않았다.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너는 마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고 있던 듯, 허한 웃음을 흘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왜 너의 그 표정을 보지 못한 것일까. 망가지고 잔뜩 울음에 젖은 그 표정을. 아니, 사실은, . 그저 너의 표정을 보지 못한 체를 했을 뿐이었다. 너를 안고 싶은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좋아해. 네가 내 앞에서 손목을 긋기 전, 너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너를 그렇게나 좋아했고, 네가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랐으면서, 네가 내게 좋아한다는 말을 해주기를 원했으면서, 어째서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던지. 아니, 짐작이 갔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 표정은, 내가 네게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조심스러운 말도 아니었고, 책이니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처럼 벌벌 떨리지도 않았고, 내게 고백하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기 때문에. 너는 마치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제가 할 일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무언가 기계적인 일을 행하는 것만 같아서,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네가 말을 이었었다. 역겨운, 새끼. 그리고 바닥으로 투둑 핏방울이 떨어졌고, 이불이 새빨갛게 물들었고, 기어이 네가 쓰러져버린 것이다. 다시 그 때를 기억하자니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아서, 나는 그만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변기를 붙들고 수십 번이나 헛구역질을 해댔다.

 

 

 

 


가 쓰러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너는 정신을 차렸으나 나를 보고싶어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런 너를 힘들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네 곁에는 언제나 주은찬이 있었다. 웃는 낯으로 네 손목을 안쓰럽게 어루만지며, 아프진 않아? 하고 조심스레 묻는 꼴을 보자니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너 또한 퍽이나 우스웠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가만히 도리질을 치며, 이젠, 괜찮아,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서 빠져나와야만 했다. 내가 거기에 있을 공간은 없엇다. 주은찬과 너만의 세계. 나는 그 속에서 도망쳐버렸다.


네가 웃는 모습이 꼴도 보기 싫었다. 내게는 보여주지 않은 그 모습을 주은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고 있다니. 방구석에 틀어박혀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밖에선 현무가 수도 없이 내 이름을 불렀고, 이따금 멍걸이가 박박 문을 긁어댔지만, 그럴수록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청가람. 이 곳에선 마치 네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나는 그만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룡.”

 


환하게 웃던 네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져버렸다. 너는 넋이라도 놓은 듯 빤히 나를 바라보더니, 얼른 등을 돌리고 누워버렸다. 나는 가만히 걸음을 옮겨 네 앞으로 다가갔다. 색색거리며 네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몸을 숙여, 네 눈을 가린 이불을 슬쩍 들었다. 짙게 진 그림자 속으로도, 새빨간 네 눈이 빛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입 밖으로 툭 뱉어진 말이 네게 닿았을까. 네가 고개를 저으며 나를 밀어냈던 걸 보니, 분명 네가 들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그 말에, 네 움직임이 멈추었다. 내내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멎고, 이불을 그러쥐던 네 손에 힘이 풀리고, 꾹 감겨있던 눈이,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괴로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허리를 굽혀 너와 눈을 맞추었다. 네 눈이 소름이 끼치게 냉랭해서……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네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네 이름을 부르고, 네 손을 잡는 사소한 일에도 네 허락을 구했다. 이름, 불러도 돼? 내 물음에, 네가 대답했다. 아니, 부르지 마.

 


백건,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네 입술이 벌어질 때마다 잔인한 말들이 쏟아졌다. 나는 거기에 후두둑 상처를 받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거듭해서 묻자, 네가 단호하게 말했다. 넌 날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썩 잔인한 말은 아니었다. 내게 욕을 하지도 않았고, 경멸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너는, 담담한 눈으로 그렇게 나를 바라보며 짧게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백건, 네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 말에, 나는 얼른 병실을 떠나버렸다. 청가람. 투명한 케이스 안에 가만히 들어있는 너의 이름을 바짝 구겨대며, 나는 급한 걸음으로 네게서 도망쳤다.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핏자국이 묻은 이불과, 지독한 냄새가 가시지 않은 방에 앉아, 나는 가만히 네 생각을 했다. 밤마다 누군가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러댔고, 이따금 애정이 서린 손길로 내 어깨를 끌어당기고는 했다. 잘 다녀 와, 하품을 하고 배를 긁으며 그렇게 배웅하고, 저녁 준비 다 됐어, 라며 마중을 했다. 씻었어? 네가 가만히 물어오면, 나는 언제나 그랬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장난스레 웃고는 했었다. 너는 언제나 그곳에 머물렀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서 모든 걸 받아주었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그런 네게 감사할 줄을 몰랐고, 만족할 줄을 몰랐고, 그래서 너를 망쳤던 것이다. 너를 망가뜨리고, 주은찬을 망가뜨리고, 기어이 내 모든 것이 망가뜨려버렸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나서, 나는 인상을 쓰며 홱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멈추었다. 날카롭게 선 칼날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로 가져가는 손이 덜덜 떨렸다. 너는 왜, 저를 해쳤을까. 내가 그렇게 미웠으면 그 칼날을 내게 세웠으면 될 텐데. 너는 왜, 내가 아니라 네게 상처를 입힌 걸까. 드르륵, 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울리며 칼날이 세워졌다. 손등에 닿은 그 날이 시리도록 차가워서, 머릿속까지 굳어버리는 기분이라, 나는, 그만.

 


 

 

 

머릿속으로 가만히 앵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주은찬의 얼굴이 보인 것 같았고, 현무 놈의 얼굴이 보인 것 같았고, 그리고 그 뒤로 네가, 있었던 것 같았다. 백건. 내 이름을 부르는 주은찬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어째서인지 나를 내려다보는 너의 그 얼굴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네가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입술이, 가만히 움직였다. 붙었다가, 떨어지고, 양 옆으로 길게 찢어졌다, 다시 오므라들었다.


 

잘 했어. 백건.’


 

네 입술이, 아마 그렇게 잔인한 말을 뱉어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