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포비아 백건X호모 청가람
이른 점심.. 포비아게이 뽕빨게 해주신 ㅅㄹ님 감사합니다...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Naked heart
14.11.23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머리가 눈처럼 새하얗고, 눈이 별처럼 빛이 났다. 특별하고 유난스런 계기랄 것도 없는 짝사랑이었다.
나는 언제나 너를 훔쳐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자애들처럼 네 책상이니 사물함에 몰래 편지를 놓아두지도 못했고,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좋아한다, 고 말하지도 못했다. 나는 너와 2년 째 같은 반이었지만 단 한 번도 네게 이름을 불리지 못했고, 언제나 그 멀리서 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족해야만 했다. 나는 언제나 너를 훔쳐보았다. 펜을 쥔 네 손이 움직이는 걸, 그 널따란 등이 천천히 굽어지는 걸.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너를 훔쳐보다, 너와 눈이라도 마주칠라 하면 얼른 고개를 돌려 아닌 체를 했다.
그 언젠가였다. 체육시간. 그 시간을 유난히 좋아하던 네가, 몸이 아프다며 교실에 남았다. 그 주의 주번이던 내가 출석부를 놓고 가 잠깐 교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봄바람이 불었다. 하얀색의 얇은 커튼이 바람에 흩날렸고, 그 앞에 네가 있었다.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너는 배를 끌어안고 책상에 동그랗게 말아놓은 자켓에 머리를 박은 채였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봄바람에 섞여 교실 안을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교탁에 놓인 출석부를 품에 안았다. 굳게 닫힌 문고리를 쥐고, 나는 수십 번이나 너를 돌아보았다. 딱 한 번.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너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나는 내내 쥐고 있던 문고리를 놓았다. 발소리가 나는 게 무서워, 나는 조심스럽게 바닥을 디뎠다. 네 앞에 서자, 색색거리던 숨소리가 조금은 크게 들려왔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네 널따란 어깨가, 백색의 하이얀 머리카락에 파묻힌 귓불이, 계속해서 들려오던 네 숨소리에, 나는 그만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좋아,해. 백건.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말을 겨우겨우 삼키며, 나는 얼른 뒤를 돌았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네 숨소리보다, 바람이 부는 소리보다 큰 것만 같아서,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들켜버리는 게 무서워 나는 후다닥 교실을 빠져나갔다. 너, 얼굴 빨갛다. 체육 선생에게 출석부를 건네는 나를 바라보며, 친구 하나가 그렇게 말했기에, 나는 급하게 뛰어와서 그런가봐, 하고 변명해야 했다.
너와는 그 후로도 접점 하나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좋아했다. 그 날. 네가 수업을 빠지던 날. 내가 출석부를 두고 갔던 그 날. 네 앞에 서서 가만히 너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 날을, 나는 수백, 수천 번을 거듭해 떠올리며 입속으로 네게 고백을 해대며 그렇게 반년을 견뎌내었다.
방학식이었다. 교실에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있어도 입김이 나오고, 모두가 들뜬 분위기가 일찌감치 교실에 서리던 날. 방학 잘 보내라. 담임의 그 말에 일제히 학교를 빠져나가는 아이들은 다시는 학교에 돌아오지라도 않을 것처럼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고, 나는 한 발자국 늦게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은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아있었다. 그새 차갑게 식은 책상들이 버려지듯 흐트러져있었고,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사물함과 창턱은 곧 잔뜩 먼지가 쌓일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가방을 꾸렸다. 걱정을 담은 담임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책상서랍에 깊게 쑤셔 박은 필통을 꺼내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때였다. 문득 네 책상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돌돌 만 자켓에 고개를 박고, 네가 한껏 앓던 그 자리. 매 쉬는 시간마다 침을 흘리고 잠꼬대를 하며 네가 잠이 들었던, 너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그 자리.
나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실에도, 복도에도, 아무도 없었다. 나는 굳게 문을 닫고, 천천히 네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네 의자를 끌어 그 위에 앉았다. 나는 네 책상을 한번 손으로 쓸고, 그 위에 뺨을 가져다댔다. 네가 누워있던 그 자리. 그, 자국. 고작 네 책상에 앉아 네 생각을 했을 뿐인데, 왈칵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나는 가만히 그 위에 팔을 베고 누웠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희뿌연 입김이 부서지는 게 보였다.
“청가람?”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그것은 확실한 너의 목소리였기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너는 문턱에 가만히 선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네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칠게 의자가 밀리며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너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반쯤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나는 어떠한 변명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냥. 네가 좋아서 앉아있었어? 아니, 이건 미친 짓이고. 그냥, 네 자리는 어떤가 해서. 미친. 또라이도 아니고……. 마땅한 변명을 지어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네가,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불렀다.
“청가람, 너.”
네 입술사이로 흐르는 내 이름이 퍽이나 달게 들렸다. 언제나 꿈꿔왔던 게 아니었던가.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네게 이름이 불리는 것. 좋아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막상 그 상황에 닿자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네 목소리 한 번에 심장이 뛰었고, 네가 부르는 내 이름에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너는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네가 무얼 하고 있었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너, 나 좋아하지?”
부끄러움, 창피함, 수치심. 그 모든 것들이 한데에 뒤섞여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을 정도라, 입술을 깨물었다. 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대체 언제부터 알아차린 걸까? 그걸 물을 새도 없이, 네가 한 걸음, 두 걸음을 옮겼다. 너는 코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찬찬히 들어 올린 네 손이, 내 어깨를 쥐었다. 그 손에 힘이 들어가 있던 탓에 나는 다시 네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천천히 네가 허리를 숙였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 나는 거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네 그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짓눌러왔다. 네가 가만히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너는 조용히 내 귓가에 숨을 불어놓고는, 무어라 속삭이기 시작했다.
“네가 날 좋아하고 있었다는 거, 일 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맨날, 날 바라보고 있었지?”
픽. 네가 웃었다.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새어나온 웃음이 귓가로 흘러들어가고, 그 웃음은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청가람.”
네가 귓가에서 입술을 떼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샛노란 눈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밝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행복에 질식한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교실이 참으로 춥고 냉랭했음에도, 너의 숨결만은 따뜻했다. 네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날, 좋아하지?”
내가 무어라고 지껄이지도 몰랐다. 대답했을까? 아니,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온 몸이 다 굳어버려서, 나는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질끈 눈을 감았다. 눈꺼풀 위에, 네 숨결이 퍼졌다.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ㅡ아니, 일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마치 일 년이나 되는 것 같았다ㅡ이 지나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네 손가락이 내 입술에 닿았기 때문에, 내 입술을 짓누르듯 꾹 눌렀기 때문에, 나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을 뿐이었다.
푸, 하.
점차 일그러지는 네 표정이 보였다. 나를 바라보던 네 눈이, 예쁘게 반달모양으로 휘었고, 입꼬리가 올라갔고, 미간사이에 주름이 잡히는 게 보였다. 네 눈이 완전히 접혔고, 입술이 벌어졌다. 네 새하얗던 피부가 붉은 빛으로 점차점차 물들었다. 나는, 상황파악도 하지 못한 멍청한 얼굴이었다.
“설마, 청가람. 내가 널 좋아하기라도 한다고 생각했어?”
멍청한, 새끼. 너의 입에서 흐르는 잔인한 말들에, 나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너는 내 입술에 닿았던 손가락을 내 교복 자켓에 문질러 닦으며 웃었다. 세상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그 와중에 소리를 내 웃는 네 웃음소리가 여전히 예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가만히, 너를 올려다보았다.
“난, 호모 새끼들은 딱 질색이거든.”
너는 짧은 그 말을 남기고, 내게 등을 돌렸다. 휘적휘적. 네가 손을 흔들어 주는 것 같아 나도 그만 너를 따라 손을 흔들 뻔했다. 손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목이 으스러질 듯 아파왔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탁. 네가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가만히 교실 안을 울렸다. 숨이 막혀왔다. 정말로. 숨이 막혔다. ‘개학식 날 보자.’ 너는 손을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몸이 떨려왔다. 허억, 헉, 허…억. 숨을 쉬는 법
을 잊어버린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더러운 호모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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