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de-image




둥굴레차!

주은찬X청가람

Still

14.11.30








가람아. 좋아해.”

 


유난히도 추웠던 밤. 너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네 생각을 하느라 꼬박 밤을 새웠다. 너의 얼굴은 보기 드물게 붉게 물들어 있었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내 손에 손깍지를 꼈고, 그리고 짧게 내 뺨에 입을 맞춰왔다. 가만히 너를 바라보자, 너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진짜야, 라고 말하고는 천천히 제 방으로 숨어들어갔다.


우습게도. 너는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냐고 물어오고, 학교에 갈 때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녀왔어, 하고 말하며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상에 네가 좋아하는 반찬이라도 나오면 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잠들기 전 내 잘 자, 하고 조용히 속삭였다. 바람이 춥다느니, 안개가 끼었다느니, 오늘따라 달이 더 노랗다느니. 너는 언제나처럼 시덥잖은 이야기를 해대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그만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네가 내게 했던 그 말은, 유난히 추웠던 그 날 밤.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했던 좋아한다는 그 말은. 모두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래서 너를 붙잡았던 것이다. 잘 자, 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너를 붙들고, 나는 가만히 네 이름을 불렀다. 내가 너를 붙잡은 것은, 네가 내게 고백, 을 하고,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주은찬.”

 


답지 않게 네 옷자락을 잡아끄는 나를 바라보며, 네가 왜, 가람아? 하고 조용하게 웃음을 흘렸다. 네 뺨은 그 날 밤처럼 발갛게 물들었고, 나를 바라보는 그 눈이 퍽이나 새까맣다고 생각했다. 빨려들어 갈 것처럼. 너는 말을 잃은 날 두어 번 더 부르며, 그 예쁜 눈을 휘며 웃었다.


 

가람아? 왜 그래?”


 

입속으로 미처 뱉지 못한 말이 맴돌았다. , . 미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뗐다 붙였다 하기를 수십 번. 결국 나는 네 손에 이끌려, 가만히 네 품에 안겼다. 코를 박은 어깨에서 희미하게 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는데, 그게 왜 그렇게 안심이 됐던지.


 

, 주은찬


 

기어이.


 

나한테 더 이상, 좋아한다고 말해주지 않는 거야?”

 


뱉어버렸다. 네 품에서 꼼질대다 가만히 네게서 떨어졌다. 나를 내려다보는 네 눈이 여전히 새카맸다.

 


날 좋아한다던 말.”


 

이 말을 하면, 네가, 우리가,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한데. 나는 멍청하고 어리석어서. 네게 그 대답을 꼭 들어야만 했다.

 


거짓말이었어?”


 

내내 머리로 생각하던 것과, 직접 입 밖으로 그 말을 뱉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금세 눈가가 뜨거워졌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뱉어놓고도 후회했다. 아니, 그게.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나는 푹 고개를 숙였다. 네게 미안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네가 얼마나 미안해할지가 눈에 훤했다. 너는 참 착하고 다정해서, 아마 내게 매일매일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하지 않을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네 진심에서 묻어나오는 그 사과를.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한 때의 이기심으로 어쩌면 영영 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다. . 네 옷자락을 쥔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준 것도 그 때였다. 가람아. 다정함이 잔뜩 서린 목소리로 부르는 내 이름이, 네 목소리가 참으로 야속했다.

 


거짓말 아니야, 가람아.”


 

너는 다시금 제 품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네 품에 푹 안기어, 나는 또다시 눈물이 흐를까 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가만히 내 등을 쓸어내렸다. 너는 내 이름을 부르는 말 뿐만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그 눈에도, 나를 만지는 그 손길에도 잔뜩 미안함과 다정함을 품었다.

 


난 지금도 너를 좋아해.”

 


너무너무 좋아해서, 뚝뚝 끊어지는 네 말에, 차마 너를 올려다 볼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너도 나처럼 울고 있다면 정말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어떻게 해야 네가 이 마음을 알아줄지를 몰라서.”

 


너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네 품에 안긴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네게 미안해 죽을 것 같았다. 나로 하여금 네가 죄책감을 느끼고, 내게 미안해하고, 이렇게나 제 마음을 다 내보여주는데 나는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미안해.”


 

결국엔 네가 울음을 터뜨렸다. 뺨에 맞닿은 네 얼굴이 뜨겁기만 했다. 그 위로 눈물이 흘렀고, 너는 가만히 울기만 했다. 나는 네 눈물을 닦아주지도 못했다. 너는 더욱 세게 나를 끌어안고는,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괜찮아. 그 한마디만 해줬으면 됐을 걸. 나는 뻔뻔하게 네게 그렇게 말해주지도 못했다.


 

좋아해, 가람아.”


 

너는 나를 꼭 끌어안은 채로, 그렇게 말했다.

 


난 너를 너무너무 좋아해.”


 

그 날처럼. 유난히도 추웠고 달이 뜨던 밤이었다. 너는 울고, 또 울었고, 그렇게 내게 다시 한 번 고백했다. 나도, 알아.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며, 나는 네 품에 파고들었다. 한 번만 더 말해봐, 주은찬. 작게 속삭이던 내 말에, 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천 번이고 내 귓가에 그 말을 속삭여주었다. 가람아, 좋아해. 네 입술이 벌어지는 모양이,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가 좋아서, 나는 네 그 목소리만으로도 하루 온 종일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