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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장그래 대사 인용

토막글

트위터에서 140자로 풀었던 소설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미생

오차장X장그래

그래서, 나는 지금

14.12.16







, 그래서 저는 지금. 꽃밭을 걷고 있나 봅니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는, 선의라고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았던, 온통 거짓뿐인 말들에 속아 넘어가도, 그래도 너는 웃었다. 거짓으로 점칠된 노루 꿀이라던, 설탕물을 얌전히, 아주 소중하게 쥐고, 너는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웃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멍청한 얼굴로.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며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이 나오는 것 같았다. 너는 웃었고, 나도 너를 따라 웃었다. , 그래서 저는 지금. 꽃밭을 걷고 있나 봅니다. 네게 그런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었다. 너는 지금 파리를 쫓아

 

똥통에 빠져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나는 나비처럼, 벌처럼 어여쁘게 날며 너를 꽃밭에 데려다 줄 수 없으니 어떻게든 살아 이곳을 떠나라고 해주던 말이었는데. 너를 위로하려던 말에서, 나는 네게 또 한 번 위로를 받고야 말았다.

 

녹색으로 깜빡거리며 빛나던 신호등이 멎었다. 빨간 불이 켜지고, 나 또한 멈추었다. 여전히 네 말이, 웃음이 생각이 났다. 나는 너를 어찌해줄 수도 없고, 누군가를 살해한 살인자인데, 그 살인에 가담한 살인자인데, 나는 그런 너의 웃음에, 모자란 내게

 

다시 한 번 의지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제발, 하늘에 신이 있다면. 저 착하고 어여쁜 너에게, 장그래에게, 한 번이라도 좋으니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등을 밀어줄 수 있는 힘을 주십사. 믿지도 않는 신을 향해, 수 천 수만 번을. 너의 얼굴이, 웃음이 생각이 나서. 불이 다

 

꺼진 어두운 사무실을 뒤돌아보며, 나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벨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기어이 너를 그리고만 있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꽃밭을 걷고 있나 봅니다.

그래, 그래야, 장그래야. 어여쁘고 아름다운 네 이름을, 부르기 미안한 네 이름을 부르며.

 

나는 그렇게 조용히 울음을 삼켰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집으로 돌아가 내 아이들에게 보일 얼굴에, 한 점의 그늘이 지지 않도록.

 

나를 나비라, 벌이라 말해준, 내가 걷는 이 길이 똥통이 아닌 꽃밭이라 말해준 너를, 수천 번이나 그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