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날조 주의
둥굴레차!
현우x주은찬
꽃이 핀 자리
14.09.06
‘현우야, 네가 현무비술을 쓰지 못한다면 현무집안에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그 말이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진 건지. 현우는 입술을 깨물며 가만히 짐을 꾸렸다. 처음 중앙에 왔을 때 챙겼던 박스에 하나하나 곱게 접어 넣으며 가만히 고개를 돌려 은찬을 바라보았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휴대폰을 붙들고 게임만 하더니, 결국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모양이었다. 현우는 물끄러미 배까지 드러내고 자는 은찬을 보더니, 손을 뻗어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공자.”
주술을 쓰지 못한다고 말하면, 정말 쫓겨나는 것일까. 언젠가 주인 할멈이 내보이던 앨범에 현무 후계자만이 공석으로,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현우는 픽 웃음을 흘렸다.
“저는 중앙을 떠날 겁니다.”
청룡의 마음을 돌릴 방법도, 그 후의 일도 모든 것이 막막했다. 떳떳하지 못한 채 중앙에 남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끝끝내 마음에 걸렸다. 쫓겨나느니, 제 발로 떠나는 것이 보기에도 좋지 않습니까. 현우는 조용한 소리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우는 대문의 잠금쇠를 풀다 가만히 등을 돌렸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본인이 맡은 임무였고, 자신을 기다릴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그 본질은 변색되어만 갔다. 중앙에 남아야하는 이유가 생겼고, 그래서 더더욱 들키지 않으려 했다. 중앙엘 온 지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정이 들어버린 것인지 쉬이 걸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아니, 아니다. 등을 돌리는 건 손바닥을 뒤집듯 쉬운 일이다. 이 찻집에 정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큰 것은…. 현우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대문을 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타고 왔던 차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은 어둡고, 적막하기만 했다. 자, 그럼… 집엔 어떻게 돌아간다. 한숨을 푹 내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산을 반쯤 내려왔을 때, 등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괴한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현우는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자세를 잡았다.
“…현우야!”
현우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급한 맘에 아무것이나 걸치고 왔는지, 은찬은 교복 자켓을 입은 채였다.
“…혹시, 낮에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해서… 그래서 떠나는 거야?”
은찬의 물음에, 현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쓴웃음만 지었다. 은찬은 입술을 깨물며 아득아득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할머니한테 잘 말해볼게! 어떻게 해서든 가람이가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장도 우리가 보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백건도 잘 타일러서 가람이한테 시비만 안 걸게 하면…!”
“됐습니다, 주작 공자. 전 괜찮습니다.”
은찬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났다. 현우는 가만히 그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중앙에 올 때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전 현무 후계자도 공석이었으니, 이번 대의 현무 후계자도 공석이래야 이상할 건 없죠. 저는 이대로 가만히 사라지면 되는 겁니다. 공자도 신경 써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사실은 공자들과 이곳에서 더 머물렀으면 좋았겠지만. 현우는 그 말을 삼켰다. 은찬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듯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고 있었지만 썩 좋은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 참. 현우는 막 생각이 난 듯 희미하게 웃었다.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이 말은 꼭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
“저와 친구가 되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은찬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현우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사실 속에 있는 것까지 모조리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 후의 반응이 두려워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다. 현우는 은찬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평소답지 않게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공자, 그런 말을 알고 계십니까. 현우가 입을 떼자, 은찬은 고개를 흔들었다. 현우는 다가와 위로를 건네지도, 어깨를 쓸어주지도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꽃이 핀 자리엔 새로운 싹이 돋는다고들 합니다. 누구였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했죠.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자. 제 자리에 또 다른 현무 후계자가 나타날 수도 있는 노릇이잖습니까. 저보다 더 공자들과 잘 어울리고, 주술도 쓸 줄 아는.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우의 쓴웃음에, 은찬은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평생토록 현무 후계자의 자리는 비워질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자리를 넘치게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에야 저렇게 말을 한다지만, 아마 속은 썩어 문드러진 채일 것이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현우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은찬은 현우를 붙잡지도, 부르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 있기만 했다. 주작 공자는 참 마음이 여려서 걱정입니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현우는 등 뒤에서 울고 있을 은찬에게 그렇게 말했다. 급기야 뒤에서 꾹 닫힌 입술 틈을 비집고 새어나온 울음소리가 들렸다.
“공자는 참 상냥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처음으로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어주신 분이시자, 마음이 맞는 좋은 벗이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가 연모한 사람일 것입니다. 현우는 입속으로 그렇게 덧붙이며, 천천히 고운산을 벗어났다. 은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현우는 어울리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멀리에서 현우의 이름을 거듭해서 부르기만 하는 은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꽃이 핀 자리엔 새로운 싹이 돋는다. 누군가 했던 말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거짓부렁이었다.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 볼 일 또한 없다. 꽃이 핀 자리는 썩어문드러질 뿐이다. 썩어 문드러져 그곳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현우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에 가 무엇을 하든, 아마 고운산에서의 일들은 평생이 가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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