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날조 주의!
둥굴레차!
백건x주은찬
악몽
14.09.06
아득히 먼 어린 시절.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할아버지들과 함께 수련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숲 속에서 수련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큰 불을 내면 산이 모조리 타버리지 않느냐고 한참 타박을 듣고 정자에 누워 잠깐 잠이 들었을 때였다.
“주작의 주술은 계집애가 배워야 마땅한데, 사내아이를 낳다니!”
“우리는 완전히 끝난 거야, 저 놈을 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재능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다고!”
“숲을 태워버릴 뻔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주작의 증표인지 뭔지도 다 쓸모가 없어! 저건 우리 주작 가문의 수치야!”
저 멀리에서, 할아버지들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자는 체를 했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주술이나, 재능이나, 증표나… 그런 단어들은 모두 알 수 없는 것들이라서, 나는 가만히 귀를 막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미도, 아비도 모두 찢어 죽여 버려야해! 아무 능력도 없는 걸 낳아놓다니!”
할아버지들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 나도 할 수 있을 만큼.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나를 부정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도 내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은찬아.”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어디에선가 나타났다. 정자 바닥에 얼굴을 박고 귀를 틀어막은 나를 끌어안으며,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 가슴께로 고개를 파묻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부드러운 손이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여전히 귀를 막고, 할아버지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자, 할아버지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하던 얘기를 내게 곧장 쏟아내고는 했다. 쓸모없는 놈, 너는 집안의 수치임이 틀림없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나를 주작의 후계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어린 내게 그렇게나 화를 내고는 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렇게 빠져나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저 왔어요~”
환하게 웃으며 문을 두드리면,
“은찬아, 누나가 과자 사왔어!”
“도련님 오늘도 오셨네요? 건이는 숙제하는 중이니까 잠깐 기다리실래요?”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 나를 예뻐해주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매일매일 온갖 비난을 받으며 숲속에 틀어박혀야 하는 우리 집과는 달리, 그곳은 언제나 행복이 넘쳐나고 있었다. 함께 무술을 수련할 또래가 있었고, 친구가 생겼다. 동이 트기가 무섭게 언제나 그곳으로 향했다. 일종의 일탈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너와 같은 사랑을 원했기에, 그 집으로 간 것이다.
“…건아.”
주륵. 눈물이 흘렀다. 흐른 얇은 눈물줄기는 이어 멈출 수가 없게 되었고, 나는 하염없이 울며 너의 옷자락을 쥐었다. 너는 내가 우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더니, 나를 자리에 앉히고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꿈을 꿨어.”
“……”
“…무서운 꿈을 꿨어.”
그렇게 중얼거렸다. 또 한 번, 그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몸이 떨렸다. 아직도 그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한다.
‘너는 우리 집안의 수치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매서운 얼굴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고작 이런 것도 하지 못해서야 어떻게 주작의 후계자가 될 수 있겠느냐!’
그들은 내게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보며 나를 비난했고, 전 주작후계자였던 이모님을 들먹이며 내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녀는 네 나이에 수백 가지의 주술을 쓸 수 있었단 말이다. 그 말은 비수가 되어 내게 꽂혔다. 나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서, 그랬기 때문에 그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건아, 나는.”
목이 메었다. 멈출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오고 계속해서 끔찍한 악몽이 숨통을 누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만 참을 수가 없어서, 몇 년 동안이나 입속에 꾹꾹 눌러 담던 말들을 쏟아냈다.
“태어나면 안 되는 거였을까?”
너는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귓가엔 계속해서 할아버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울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바라본, 할아버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끅끅거리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맞고만 있던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괴로운 느낌에 눈을 뜨면 할아버지가 내 배 위에 앉아 베개로 숨을 짓누르던 날도 있었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모두들 우리를 손가락질했고, 내 등 뒤로 비난을 퍼부었다.
“아니야.”
확신의 찬 너의 목소리는,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모두가 널 부정한다 하더라도,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너는 언제나 내가 듣고 싶은 말만을 고른다. 수없이 늘어진 단어를 찾아, 그걸 내게 전해준다. 나는 너를 붙잡고 밤이 새도록 아주 오랫동안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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