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AU 짧음주의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Silent Hill
14.10.09
세상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자동차들이 클렉션을 울리는 소리도, 밤마다 옆집의 개가 짖는 소리도, 놀이터에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도, 휴대폰이 반짝반짝 빛나며 옅은 진동이 울리는 소리도 모두 들리지 않는 세상이었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금붕어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며 서로의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며 저도 입을 뻐끔거렸다. 세상은 미치도록 조용했다.
아니, 적어도 가람에게는 그랬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끄럽던 세상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는데, 정작 장본인인 가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듣지 못한다. 듣지 못하니 대답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사실 대답 할 수 있었지만 가람이 그걸 거부했다. 가람은 입을 다물었고, 들리지 않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완전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랬음에도 여전히 머릿속에는 어렸을 적 들었던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톡톡.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리면 예쁜 소리가 났었다.
음악실. 가람은 그 앞에 멈춰 섰다. 학교를 소개하던 팜플렛에 분명 피아노가 마련된 음악실이 있다고 자랑스레 써놓지 않았던가. 듣지 못하는 대신 가람은 그 팜플렛을 읽었다. 모두가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가람은 오직 고개를 처박고 글자를 읽어야했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 고개를 들라는 교사의 말도 무시했다. 앞을 보라며 저를 불러대는 그 목소리도 모두 무시했다. 입학을 할 때부터, 가람은 유명인사 비슷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랬음에도 아무도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가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곁에 누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니 대화도 나눌 수 없을 것이다. 입을 다물어 버린 지 오래였으니 말하는 법도 잊은 것 같았다. 예전에는 입을 열면 참 어여쁘고 답지 않게 청명한 소리가 났는데, 이제는 입을 벌리면 짐승이 우는 소리 같은 괴이한 소리가 났다. 그래서 가람은 더더욱 입을 다물어야 했다. 가람은 멀쩡히 문에 붙어있는 그 이름을 바라보다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키가 닿지 않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작게 난 틈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이 보였으니 분명 세상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가득 찼을 것이다. 문득 어릴 적의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가람을 무릎에 앉히고 피아노를 쳐주고는 했다. 입으로 하나하나 음을 짚어가며, 노래를 하며, 어머니는 그 얇고 가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러주었다. 그 때의 생각이 나서, 가람은 그만 울음이 터졌다. 다리를 끌어안고 몸을 더더욱 둥그렇게 말았다. 무릎 사이로 박은 코끝에, 투명한 울음이 맺혔다.
그 시각, 백건은 어째서 저와 눈이 마주친 누군가가 음악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지가 궁금했다. 보아하니 돌아가는 그림자는 없었고, 아직도 그 앞에 있을 터인데 어째서 들어오질 않는지. 백건은, 굳이 말하자면 유명인사였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천재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제가 사는 구에서 가장 좋은 피아노를 가지고 있다는 학교의 소개에-사실 다른 학교는 피아노가 없었다-덥석 이곳으로 진학한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는 같이 진학하기를 희망했지만 백건은 거긴 피아노가 없잖아, 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학교의 유명인사로써, 피아노 천재로써, 백건은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아왔다. 수업시간이나 방과 후를 막론하고 피아노를 사용해도 된다는 다짐을 받은 대신, 언제나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평범 이상의 외모와 재력을 가진 터라, 백건은 더더욱 유명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잘난 외모, 뛰어난 실력, 그리고 그의 누나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배우임이 밝혀진 순간 학교가 발칵 뒤집혔음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백건을 보면 꺅꺅 거리는 아이들이 언제나 있었다. 그들은 팬클럽을 자처했고, 언제나 백건이 연주하는 음악실엘 들어와 옆에서 구경해도 될까? 하고 수줍은 듯 말하며 날카로운 눈으로 백건의 온 몸을 훑었다. 손목에 찬 시계, 신고 있는 신발, 어깨에 멘 가방, 그들은 그 모든 것을 파악했고, 더더욱 백건에게 매달렸다. 백건 또한 그들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았고, 그랬음에도 그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막지 않았다. 모두가 저를 동경하고 사랑했다. 백건은 이미 그것에 취해버려서, 지금처럼 문 밖에서 서성이는 그림자를 보면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뚝. 건반을 누르던 손이 멈추었다.
일부러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걸었다. 일부러 거세게 문을 열었고, 일부러 큰 소리로 뭐야?라고 물었는데, 눈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도망가는 것도 보지 못했고, 발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그러다 발에 뭔가가 걸렸다. 백건은 가만히 아래로 시선을 주었고, 눈이 새빨간 가람이 보였다.
“넌 뭐야?”
날카로운 백건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그렇지만 가람은 듣지 못했다. 누군가 제 앞에 서서 입술을 움직이는 것 같긴 한데, 들릴 턱이 없었다. 시야가 흐려서 보이지도 않았고, 또 썩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가람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등을 돌렸다. 복도 끝으로 점점 사라지는 가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백건은 입을 벌렸다. 저건 뭐야?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제 말이고 얼굴이고 죄다 무시한 채 싹 뒤돌아버리는 그 가람의 뒷모습이, 유난히 백건의 눈에 걸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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