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AU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청춘예찬
14.10.14
백건은 학교에서 꽤나 유명한 축에 속했다. 부모님은 잘나가는 직업에 누나는 요즘 핫한 배우인 것도 모자라서 얼굴도 잘났지, 집안도 잘난 편이고… 뭣보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천재의 재림이라고. 매스컴이며 뭐며 예술 잡지를 보면 어디에나 백건의 이름이 실렸다. 어디에서는 백 년에 한 번 태어나는 천재라 하고, 어디에서는 천 년에 한 번 있을 천재라 하고… 하여튼 중요한 건 백건은 꽤나 타고난 것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랬으니 모든 아이들의 동경이 될 수밖에. 물론 그런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모두 저들끼리만 그렇게 말했을 뿐 백건의 앞에 서면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띠며 너 정말 대단하다느니 역시 백건, 이라느니 하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백건의 일과는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의 입 위에 오르내리는 일이었다. 백건 또한 그걸 알고 있었고, 남들이 저를 바라보며 무어라 하는지도 대충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귀찮다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그걸 뭐라고 했더라. 나르시스트? 굳이 말하자면 백건은 그런 과였다. 철저하게 저의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쏟았다. 백건은 사람밖에 그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만을 그렸다. 미술실 한켠에 쌓인 캔버스도 그랬고, 매스컴을 타는 그림들도 그랬다. 비평가들은 그 점을 정확히 꼬집으며 재능이 없다, 라고 말하고는 했지만 언제나 반대편에선 백건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백건은 그런 일들엔 코빼기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언제나처럼 캔버스 안에 제 얼굴을 담았다. 잿빛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상아색을 덮었다. 노랗고 노란 빛, 옅은 분홍빛. 천천히 캔버스에 담기는 그 얼굴을 바라보던 백건의 얼굴위에 희미한 빛이 돌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지 못했다. 어렸을 적엔 길거리에 핀 하잘 것 없는 들꽃을 좋아했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뭉치도 좋아했고,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는 글을 쓰는 제 아버지의 등이나 키우던 강아지를 쫓는 누나의 모습을 담고는 했다. 어리던 백건은 백은에게 그렇게 물었다. 누나, 누나는 왜 그렇게 예뻐. 어리던 백은은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했다. 부끄러움에 멋쩍게 웃으며 아냐, 건아, 우리는 똑같이 생겼어, 라고 말했더랬다. 아마 그 때부터였을 거다. 백건이 유난히 제 얼굴에 집착하기 시작했던 건.
이상하리만치 백건은 예쁜 것에 미련을 가졌다. 객관적으로 예쁜 것이 아니라, 제 눈에 예쁜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백건이 저를 가리키며 나는? 이라고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 후로 백건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아니, 아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게 아니라, 제 얼굴을 그렸다. 오로지 제 얼굴만. 처음에는 어렸을 적 제 사진을 따라 그리고, 기어이는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따금 제 얼굴을 그리는 백건의 뒤로 가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놀리듯 지금 너를 그리는 거냐며 웃음을 흘렸지만 붓을 쥔 백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백건이 하잘 것 없는 들꽃을 그렸듯이, 구름 뭉치를 그렸듯이, 제 누나를 그렸듯이, 잠깐 스쳐지나갈 거라 생각했다. 분명 반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다른 걸 찾아낼 것이라고. 그러나 백건은 그것을 가볍게 무시했고, 오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오로지 제 얼굴만을 그려대었다.
“백은 씨의 말로는, 본인을 그리신다구요.”
의미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꽤 오랜 기간 동안 그려왔다고 하는데, 다른 작품을 할 계획은?”
백건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앉아,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제 대답을 요구하는 기자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크흠, 그럼, 본인을 그리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인터뷰를 시작한지 한 시간. 내내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팔짱을 낀 채 기자와 눈만 마주치던 백건이 처음 입을 연 순간이었다.
“예쁘니까.”
네? 당황스런 기자의 말이 들려오고,
“보기 좋잖아요.”
백건은 딱 거기까지만 말했다. 다음 날 백건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가 학교를 휩쓸었다는 것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눈에 훤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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