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비가 오던 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나오던 현오가, 편의점 그늘 아래에서 비를 피하던 가람이를 만나는 게 보고 싶다. 가람이가 열여섯이었는데, 교복을 떡하니 입은 채로 아, 나 그거 한 대만, 하고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현오가 암 말 못하고
담배 털리고... 골목에서 한 대니 두 대니 연달아 뻑뻑 피우더니만 고마워, 하고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한테 반말하는 가람이가 계속 눈에 밟히는 현오.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한 동생이 있는데 현우랑 너무 스타일이 달라서 현우는 영 도움이 안 되고
그래서 가람이를 만나려고 매일매일 편의점에 갔으면 좋겠다. 별로 피지도 않는 담배를(첫 만남 때는 회사 일로 너무 빡쳐서 한대 필려고 산거고) 맨날 사가고, 결국 편의점에 발만 들여도 점원이 담배 건네면서 얼마요~ 하는 때가 되었을 때, 다시 골목에서
현오가 가람이랑 조우했으면. 조우가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닌가. 암튼. 가람이가 또 현오한테 담배 한대만 달라고 그러고 현오가 아무 말 없이 건네주면서 나 몰라..? 하니까 가람이가 갑자기 눈이 싸늘해져선 아저씨 혹시 이쪽 취향이에요? 하고 되바라지게
묻는 걸 듣고서 현우가 많이 당황했으면 좋겠다. 물어보지도 않은 처음 만났던 날을 빠짐없이 설명해주며 당황하는 현오를 보다가, 아저씨 귀엽다, 하고 뺨 어루만지는 가람이.. 뭔가 굉장히 뒤바뀐 것 같지만 얘넨 괜찮아.. 약속은 잡지 않았지만 그래도
둘이 간간히 만났으면 좋겠다. 또다시 만난 날엔 아저씨 골초에요? 하고 묻는 가람이와, 왜, 오늘도 한 대 줄까? 하고 농담하는 현오. 물론 뒤에는 스무 살이 되면, 그때는 줄게. 하고 희미하게 놀리면서 웃었으면 좋겠다. 그럼 가람이가 바락바락 대들고
그렇게 만날 때마다 오 분 십 분씩 시간을 내 이야기를 하고 가람이가 벽에 기대어 현오가 담배피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저씨, 입술이 되게 섹시한 거 알아요? 하고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물어봤으면. 현오가 얼굴이 빨개지고 당황해서 켁켁거리는데 가람이가
웃으면서 어른이 뭐 이래, 웃겨. 하면서 놀렸으면.. 현오는 집에서 현우를 볼 때마다 현타가 오지만 그래도 가람이를 보면 그런 게 싹 녹아내리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언젠가 골목에서 담배피던 현오의 손을 가람이가 잡고,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고. 물론 끝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 뒤로 자주자주 입 맞추면서 가람이가 웃었으면 좋겠다. 아저씨 입에서 담배 냄새나요, 너도 마찬가지야, 하면서 아웅다웅하는거 보고 싶어.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가람이네 집이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둘이 만나지 못하게 되었는데, 가람이가 이사 가요, 하고 말하려던 일주일동안 현오는 야근+회식+접대가 겹쳐서 만나지도 못한 채 그렇게 가람이를 떠나보내게 되고, 현오가 한 두어 달을 매일 그 편의점 앞에서 담배 피면서 가람일 기다렸으면 좋겠다.
결국 현오는 지독한 골초가 됐고, 가람이는 무사히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그렇게 한 단계 한단 계 평범한 일상에 젖어 들어가는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졸아서 예전에 살던 동네에 다다랐으면. 향수에 젖어서 저도 모르게 돌아다니다
자연스레 발길이 편의점에 다다르게 되고, 또다시 그 앞에서 애꿎은 담배만 태우고 있는 현오를 발견하고.. 현오가 발길을 돌리려던 걸 가람이가 손목을 붙들고 아저씨..? 하고 불렀으면 좋겠다. 현오도, 가람이도 이렇게 마주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서로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아주 오래오래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현오가 굵은 눈물만 뚝뚝 흘렸으면 좋겠다. 가람이의 팔을 붙들고 고개를 떨군 채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가람이가 거기에 대고 피식 웃으면서
아저씨, 담배 냄새나요. 하고 말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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