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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AU

둥굴레차!

백건X청가람

청춘예찬

14.10.31







나 누군지 알아?”



모를 리가. 바짝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물어오는 그 말에, 차마 그렇노라, 전학 왔을 때부터 너를 보고 있었노라 말할 자신이 없었다. 화악 얼굴이 붉어진 기분이 들어 얼른 인상을 썼다. 기분 나쁜 생각기분 나쁜 생각…… 거실 소파에 앉아 싸늘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생각이 나자,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넌 누군데?”

난 백건이라고 하는데……



네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이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덕지덕지 채 닦지 못한 물감 자국이 남아있고, 바짝 다가온 그 머리칼에선 진한 샴푸 냄새가 났다. 나는 얼른 책을 끌어안았다. 나 미쳤나봐.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게 무서워서, 너를 무시한 채 등을 돌렸다.





 

처음 전학을 왔을 때, 학교라도 좀 둘러보지 않겠냐던 선생의 말에 천천히 학교 안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한 층 아래 지하실에선 은은한 피아노 소리가 울렸고, 사람이 없는 복도는 참으로 한산하고,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쏟아지는 노을빛에 눈이 부시고, 그리고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하얀 이젤이 천천히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곁에 놓인 천에 붓을 몇 번이나 닦더니, 다시 붓 끝에 물감을 묻히는 일련의 행동이 반복되었다. 그 손길이 참으로 조심스러워 보여서, 나는 숨소리도 채 내지 못한 채 그걸 훔쳐보기만 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미술실. 새까만 판 위에 하얀 글씨로 새겨진 글씨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나는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서 그림을 그리는 그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답지 않게, 손이 참 길다고 생각했다.


해가 다 지고, 두어 시간이 더 지나서야, 너는 붓을 놓았다. 푹 숨을 뱉으며 넥타이를 풀어 가만히 손에 쥐고, 장난이라도 치듯 앞뒤로 넥타이를 흔들어보더니, 저 혼자 킥킥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문득 네가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네 시선이 닿은 곳에 수없이 쌓인 캔버스가 보였다. 너는 가만히 팔을 들어, 캔버스 더미에 휘적휘적 손을 흔들더니, 안녕, 하고 작은 소리로 인사했다. 무심한 듯 푹 잠긴 목소리에 그만 숨을 삼켰다. 우습게도, 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가를 덮은, 드문드문하게 흩어진 머리칼 사이로 샛노란 눈동자가 보였다. 나는 그것을 아주 오래오래 바라보다, 네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얼른 걸음을 돌렸다. 안녕, 하고 나른하게 중얼거리던 그 목소리가, 넥타이를 풀어내던 그 손가락이, 멍하니 시선을 주던 그 샛노란 눈동자가, 꾹 다문 채 영영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그 입술이, 계속해서 생각이 나서, 우습게도, 나는 이것이 사랑이 아닐까 하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





 

너 백건이라고 알아?


처음 전학을 왔을 때부터 지겹게 들어오던 이름이었다. 너의 이름을 정말로 몰랐으니, 그게 누군데? 라고 물었다. 근처에 앉은 여자애들이 꺅꺅거리며 제 가방이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바로 앞에 들이밀었다. 샛노란 눈, 잿빛 머리칼, 그 무엇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싸늘한 눈이, 그저 차가워 보이기만 했다. 너였다. 학교를 둘러보던 날, 등을 진 채 그림을 그리던 너였다. 멀거니 그림을 그리고, 손을 뻗고, 안녕하고 인사하던 네가 거기에 있었다.


창가에 서서 한참 너의 이름을 찾아보는데, 운동장 한가운데에 네 모습이 보였다. 너는 깊게 숨을 뱉더니, 땀에 절은 체육복 상의를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창문에 매달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네 이름을 불렀다. 백건, 백건. 너는 힐긋 이쪽을 쳐다보았고, 곧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일순 너와 눈이 마주친 걸, 너는 아마 죽어도 모를 것이다.





 

저를 아냐고 묻던 날. 그 날 이후로 너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반엘 찾아와 내 이름을 부르고, 나에 관한 걸 캐묻고 다니고, 복도를 지날 때마다 너의 이름이 엮이며 쟤를 그렇게 따라다닌다며, 하는 소문이 뒤따랐다. 아니, 그것은 사실이었으니 소문이라고 하기엔 뭣했지만……. 너는 매일 도서실에 남았다. 내 맞은편에 앉아 하루 종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나를 바라보고, 그리고 엎드려 눈을 감았다. 겹쳐진 팔위로 네 얼굴이 보였다. 굳게 감긴 눈, 반쯤 벌어진 입술. 아무도 없는 도서실엔, 오직 너와 나 뿐이라, 나는 쿵쾅대는 내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수없이 바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나는 가만히 너를 훔쳐보았다. 책을 얼굴에 바짝 대고, 그 위로 눈을 흘겨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쉬이 깰 것 같지가 않아, 나는 조심스레 책을 덮어놓고 손을 뻗었다. 살짝. 손가락이 닿았다. 네 손등에, 손가락이 닿아서, 나는 황급히 손을 떼고 신음을 흘렸다. 너는 여전히 잠이 든 채라, 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너의 이름을 불렀다.



……거언.”



행여나 네가 깨어나지는 않을까,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지금 뭘 하는 짓이냐며 캐묻지를 않을까가 무서워서, 나는 네 이름을 거듭해서 불렀다. 백건, , 백건.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네가 눈치 채지 않을까 무서워졌다. 그럼에도 너의 이름을 불렀다. 백 번이나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때 쯤, 네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는 찬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네 옆으로 걸음을 옮겨 몸을 낮추었다. 너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심장이 뛰었다. 주체를 하지 못하고, 제 멋대로 쿵쾅대며 뛰었다. 나는 얼른 손으로 가슴팍을 쥐었다. 제발. 제발 들리지 않기를. 그러며 눈을 꾹 감았다. 너의 얼굴을 보지 않으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만 같았다. 닫힌 눈꺼풀 안에, 언제나 똑바로 나를 바라보던 샛노란 눈동자가 있을 것이다. 꾹 다문 저 입술로 언제나 지겹도록 내 이름을 불러대었을 것이다. 나는 가만히 잠이 든 너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해, 백건. 가만히 두 손을 모아 입술에 대고는, 자그마하게 속삭였다. 백건, 백건. 좋아해. 너는 여전히 잠이 든 채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너를 많이 좋아했어. 그 말은 차마 뱉어낼 수가 없어, 조심스레 입속으로 삼키었다. 가만히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에 네 머리칼이 걸렸다. 언제나 바라봐오던 잿빛 머리칼. 한 번 손을 뻗자, 거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덜덜. 허공을 휘젓는 손이, 쉼 없이 떨리기만 했다. 네 손등을, 손끝을, 뺨을, 그리고 너의 입술을. 손끝에 닿은 그 온기에 소름이 끼쳤음에도, 무슨 용기가 났는지 천천히 네게 다가갔다. 내 숨소리가 네게 닿을 것만 같았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책상 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리가 덜덜 떨려서, 금방에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나는 가만히 몸을 숙였다. 입술이 닿았다. 너의 입술에, 내 입술이 닿았다. 미칠 듯이 뛰는 가슴과, 코앞에서 잠이 든 네 모습이 보여서, 나는 그만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숨이 차올랐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고, 나는 너를 깨우는 것도 잊은 채, 허둥지둥 도망쳐버렸다.





 

밤새 너의 생각을 했다. 손끝에 닿은 네 손등의 감촉과, 입술에 묻은 네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아, 나는 씻지도 못한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네 이름을 불렀다. 넥타이를 풀던 너의 그 손가락이 왜 생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서 너는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불렀고, 네 널따란 품안에 나를 안았고, 그리고……


손안에 가득, 끈적한 것이 묻어났다. 너를 그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역겨워, 나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수도 없이 속을 게워내었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술 위로 위액이 흘렀다. 작게 거품이 일며 내려가는 물살을 바라보다, 나는 다시 한 번 구토를 했다. 네게 미안해서 죽을 것 같았다. 이것이, 이런 더러운 것이 너를 좋아하는 나의 감정이라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그 다음날은 유독 너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다. 어젯밤, 너를 상대로 그런 역겹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고, 차마 멀쩡한 얼굴로 너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하루 온 종일 책에 머리를 박은 채 네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던 날이었다. 너는 언제나처럼 시답잖은 걸 물어왔다. 막 책 읽는 애들 중엔 작가 가려서 읽는 애들도 있잖아. 너도 그래? 그 말에 한참이나 고민했다. 가리는 작가가 있었던가. 애초에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는,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나를 신경써주지 않는 가족의 품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문득 집어든 것이 얇디얇은 동화책이었을 뿐이었다. 그 후로지겹게 읽어대기는 했다. 가리는 작가가 있던가. 속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딱히, 없는데. 너는 무슨 소리냐는 듯 잠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가, 푸하, 하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골 때린다, 진짜.



뭐야, 내내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게 말하며 너는 씩 미소를 지었다. 네가 웃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가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난 그렇게 두꺼운 거 못 읽겠던데. 읽을 수 있을걸. 넌 진짜 책 좋아하나봐. 사실은 니가 훨씬 좋아. 그렇게 매일 책만 읽는데, 안 지겨워? 네가 앞에 있어서 책 내용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와, 죽을 것 같애. 그리고 힐긋, 슬쩍 널 훔쳐보던 눈이 닿아 얼른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의 뚱한 표정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구나. 복잡한 기분이 되어, 가만히 책장만 넘기고 있는데, 문득, 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손이 예쁘다. 화악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에 있던 학교는 어땠어? 또다시 질문을 던져오는 네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얼굴이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르진 않았을까. 네가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눈두덩이가 뜨거워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꾹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을 뜬 곳에는, 커다란 너의 손이 있었다. 너는 책 위에 손을 얹은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뭐하자는너의 손을 치워낼 때였다. 네 표정이 걸렸다.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너는 조용하게 속삭였다.



청가람.”



야속한 너는 내 이름을 불렀다. 깊게 잠겨버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힐긋 너를 훔쳐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 샛노란 눈동자. 나는 거기에 유난히 약했다.



난 널 그려보고 싶어.”



손목이 붙잡혔다. 너의 손이 무척이나 뜨거워서, 그 자리에 화상을 입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나는 얼른 네 앞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얼굴이 붉어지기만 해서, 내가 너를 좋아하다는 걸 들키는 것이 참으로 무서워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려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도 몰랐다. 잡혔던 손목이 화끈거렸다. 나는 얼른 반대편 손으로 손목을 그러쥐었다. 여전히 그곳엔, 네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 ……! 무어라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꽉 막혀버린 입술이 열리지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라고는,



미친 거 아냐?”



하는, 앙칼진 목소리. 나는 얼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곧장 도서실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도, 여전히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 너의 얼굴은 처음 보았다. 항상 내 앞에서 멍청하게 웃었다. 주은찬이랬나, 하는 네 친구와 똑같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는 했다. 내 맞은편에 앉아 오래오래 나를 바라보며 시덥잖은 걸 물어오고,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갑자기 네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바라보던 눈, 꾹 다물던 입술, 그리고, 확 잡아오던, 너의 커다랗던 손. 너를 그려보고 싶어. 그 말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네가 벤치에 앉아 가만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려쬐고, 교정에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는 날이었다. 너는 제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앉으라고 말했다. 다정한 너의 말이 기분이 좋아서, 나는 심장이 더욱 빨리 뛰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를 못했다. 너는 네 곁에 앉은 나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청가람.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불렀다. 청가람, 이쪽 봐봐. 내 뺨에 가져다 댄 너의 손이 화끈거렸다. 나는 가만히 너의 손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성큼, 네가 코앞까지 다가왔고, 색색 내뱉는 너의 숨결이 다 느껴졌다. 너는 가만히 내 이름을 불렀다. 청가람, 청가람. 서너 번, 내 이름을 거듭하더니, 가람아. 하고 숨을 뱉는 네 목소리가 들린 순간에,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내 뺨을 잡은 너의 손이 뜨거웠고, 너의 숨결이 느껴졌고, 그리고 네가 내게 키스했다. 입술에 가만히 너의 입술이 맞닿았다. 너는 날카롭게 선 이로 내 입술을 짓이기더니, 조그마한 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해, 청가람. 너의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내 손은 너의 손목이나, 어깨를 붙잡지도 못하고 가만히 허공에 멈추었다. 이따금 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거언, 그만. 조그맣게 속삭이며 너의 어깨를 밀어내자, 눈앞의 네가 씩 웃었다. 싫어. 입모양으로 조그맣게 속삭이고는, 넌 다시 내 입술에 입을 맞춰왔다.





 

꿈에서 깬 것은 새벽 두 시였다. 온 몸이 뜨거웠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희미한 신음이 흘렀다. 나는 얼른 입을 틀어막고, 베개에 코를 박았다. 가지가지한다, 청가람. 입속으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상상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꿈에까지. 사실 네가 꿈에 나온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네가 키스했다. 사랑해, 청가람. 그렇게 속삭여주었다.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이 예쁘네. 너를 그려보고 싶어. 자꾸만 떠오르는 그 말에,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너는 언제나 내게로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만히 눈을 덮은 긴 속눈썹이 보였고, 샛노랗고 영롱한 그 눈동자도 보였다. 네가 그렇게 바짝 다가올 때면, 나는 내 심장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언제나 한 걸음을 멀리 떨어져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언제나 그랬다. 이따금 나를 바라보며 예뻐, 라고 입모양으로 가만히 속삭이는 걸 못 본 척한 것이 수두룩했다. 너는 턱을 괸 채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게 참을 수가 없었다. 너는 언제나 내게 예쁘다고 말했지만……. 내 이름을 부르던 그 입술이, 반달 모양으로 가만히 휘어지던 그 눈이 참 어여뻐서, 매번 네게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나는 언제나 네 이름을 불렀다. 네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그 눈이 좋았다. 내 이름을 부르던 너의 그 입술도. 네가 잠이 든 때면, 나는 그 언젠가의 오후처럼 너의 손끝을 쥐었고, 너의 귓가에 가만히 사랑을 속삭이며, 그리고 네게 키스하고는 했다. 나는 아마 지옥에 떨어질 거야. 너를 상대로 이렇게 나쁜 생각을 해서, 하느님도 나를 용서해 주시지 않을 거야.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너의 이름을 불렀다.